충남 아산시 배방읍 호서로 315번길 89-22에 세워진 왕성교회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으면 세워질 수 없는 교회였다. 당시 16년 전 동네에 교회가 세워질 때에 온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발전기금 1억을 내라고 윽박지르고, 교회가 세워지면 불을 지른다고 협박까지 했었다. 교회가 세우질 곳은 동네와 떨어져 허허벌판과도 같아 직접적으로 동네에 피해가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극구 반대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와 인접해있는 수 십년 전에 세워진 절이 있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 절에 나가는 신도들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필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여 결국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마을기금 200만원 주고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 받았다.
우여곡절을 겪고 세워진 왕성교회는 지금 100여명의 등록교인으로 성장했고, 땅도 구입하여 아름답게 건축까지 해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로 세워져가고 있다. 지금은 온 동네사람들이 교회가 하는 일에 모두 동참하고 협조하여 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인근 절에 나가며 교회 설립을 반대하던 분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구원받고 직분을 받아 충성하고 봉사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동네 머슴 자처하며 온몸 전도
이렇게 되기까지 나름대로 필자 부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을 복음화를 위해서 먼저 삶으로 다가가기로 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섬기고 나누는 목회를 시작했다. 동네회관 노인정에서 매주 목요일 식사를 준비해서 어르신들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논과 밭에서 농사짓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음료수를 전달하고 때로는 함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또한 동네에서 야유회를 가거나 마을 잔치 또는 큰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항상 후원을 하고 참석해서 격려하는 일을 쉬지 않고 해왔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마을 사람들의 자녀들 결혼식과 부모님 장례식 등 애경사를 모두 챙겨 축의금과 부조금을 전달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금은 교회가 아산시 생활권으로 발전하여 천안과 아산시에서도 출석하는 성도들이 있고 갈수록 교회 인근 지역의 인구가 늘어가고 있어 성령충만한 교회로 마을목회를 위한 치매예방학교와 푸드뱅크 나눔, 다음세대를 위한 청소년적성찾기 사역의 비전을 가지고 성도들과 기도하며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다.
필자가 목사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토목을 전공하여 1980년 동아건설 직원으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서 4년6개월 동안 통신기술자로 일했다. 1983년 이라크에 갔을 때 후세인 별장이 있고 소라탑 또는 바벨탑이라 부르는 탑이 있는 사마라라는 도시에 근무할 때 그해 12월25일 성탄절 때 어떤 분이 한국으로 귀국 하시면서 교인 한 명도 없는 컨테이너 교회를 맡겼다. 그때 필자는 성경도 잘 모르고 신학을 한 것도 아니고 군대 제대 하자마자 중동으로 바로 왔는데 황당했다. 그러나 순종하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보냈다. 얼마 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옮겼는데, 5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며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간음하는 꿈을 꾸었다. 잠을 깬 후 일어나 생각하니 너무나 기가 막혀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은 내 속에 이런 죄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나 생각을 했었다. 당시 근처에 성경에 나오는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침 강 옆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문득 생각하기를 ‘그래 저 강에 뛰어 들어가 저 강을 건너가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이고 죽으면 용서 못 받는 것으로 하자’ 결정하고 점심 먹고 바로 한강 넒이 만큼 넓은 유프라테스 강 뚝에서 다이빙하여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지만 그때에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님 앞에 용서받게 될 것 같았다. 물은 흙탕물이고 그 속에는 독 있는 물뱀이 살고 있었다. 강 밖에서는 아무래도 강을 못 건널 것 같아 위험해 보였는지 큰소리로 나오라고 야단을 쳤다. 결국 4분의1도 못가서 힘이 빠져 수영을 못하게 되었다. 갑자기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순간 힘이 어디서 났는지 헤엄쳐 물살을 거스르고 강을 나오자마자 쓰러졌다. 무모하고 어리석은 방법이었지만, 내 생명은 확실히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필자는 중동에서 돌아와 오산리금식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은혜를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중동에서 번 돈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다 써버리고 학비가 없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졸업을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후 생활이 어려워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당시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어 돈을 벌지 않고 있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셨다. 결국 부모님은 돈을 벌지 않는다고 집에서 우리를 쫓아 내셨다.
당시 차비가 없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데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먹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역사로 천안 일봉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건물 지하 8평을 전세 500만원으로 얻게 되었다. 교회 집기는 미군 쓰레기장에서 버린 부서진 소파 2개를 고쳐서 교인들의 의자로 준비하고 성찬상을 헌물 받아서 강대상으로 사용했다. 벽에는 습기가 생겨 물이 흐르고 겨울에는 결로현상으로 물이 벽에서 흘러내렸다. 잠은 성전 밖 지하실계단 내려갈 때 꺽이는 부분에서 바닥에 스티로폼 1장을 깔고 생활 했다. 가제 도구라고는 겨우 남비 1개, 접시 4개, 수저 2개, 가스 부스터 1개가 전부였다.
개척 두 달만에 확장 이전
전도지 구입할 돈이 없어서 전도지를 마음껏 구입해서 전도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셔서 처음 오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 전도하기 시작했다. 개척한지 한 달 만에 교회가 꽉 차서 개척 2개월 만에 신축건물 지하 40평으로 이전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후 새벽부터 점심과 저녁 하루 3번씩 기도하는데 교인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성도들의 헌신으로 세 번째 성전이사를 하게 되는데, 지하 40평(식당), 2층 40평(교회), 3층 35평(사택), 옥상 10평(기도실)을 전세 4,500만원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후 1999년 12월에 아산시에 있는 땅 1,077평을 매입하여 2006년에 건축하여 지금의 왕성교회 이름으로 이전하여 사역하고 있다.
필자의 목회철학은 보내주신 영혼을 한 영혼도 지옥으로 보내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목회하면서 신앙 상담을 통해서 나보다 더 훌륭한 목사님에게 가서 신앙 생활하도록 설득하여 다른 교회로 보내기도 3번이나 했다. 수평이동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웃교회 성도들의 등록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다른 교회들이 오면 그 교회 목사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하니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성도와 동행은 축복
목회를 해오면서 부모님과 자녀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지하교회에서 개척하여 생활이 어려워 아이들을 선교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할 때에도 입학금이 없고, 교복살 돈도 없어서 교회 의자에 앉아서 깊은 한숨만 쉬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셔서 풍족한 은혜와 축복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감사한 것은 필자 부부는 지금까지 목회해오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하 8평에서 개척할 때에도 개척했다는 자부심과 집에서 쫓겨났으나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때에는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했다.
왕성교회는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이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선하고 아름답다. 성도들에게 늘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제 앞으로의 교회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20세기의 목회 마인드를 가지고 21세기의 사람들을 잘 이끌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팀 사역을 해야 한다. 혼자서 모든 전문가가 될 수가 없다. 교회가 택지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기도제목은 팀 사역을 위해 재건축 할 수 있는 장소와 건물 구조와 보다 효과적인 교회 운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재구 목사는=기독교한국침례회 왕성교회 담임목사이며, 교회사 연구소 이사, (사)사랑의나눔 충남본부장, 위즈덤인터내셔널 청소년적성찾기 충남본부장, M.D전도사역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가족으로는 이경화 사모와 왕성교회 반주자와 성가대 단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큰딸과 사위, 천안 충무로교회 전도사로 둘째 아들과 왕성교회 전도사로 있는 셋째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