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고 우주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하루 36명의 소중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매일 200여명의 자살유가족이 발생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지난해 공군, 해군 여중사들이 군내부의 성희롱으로 인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 했다. 올해는 유명 배구선수와 유튜버가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여 악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자살하는 본인도 엄청난 고민과 고통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남은 유가족 또한 뼈를 깎는 아픔을 느끼며 살다 투병생활을 하거나 또 다른 자살을 불러일으킨다. 자살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재난이며 아픔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살예방사업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국민생명지키기 3대프로젝트에도 반영해 임기중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를 한 후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를 신설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5.9% 늘어났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할 자살예방정책이 결국 안타까운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출발선에 선 윤석열 정부는 고귀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살려야 하는 중차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현재 자살예방사업은 보건복지부가 관장하고 있으나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만의 일이 아니다. 학생은 교육부, 군인은 국방부, 직장인은 고용노동부, 농어민은 농림축산부, 연예인은 문화체육관광부등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살이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리실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해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자살을 37% 줄인 바 있다. 윤석열 정부도 대통령실에 상설화된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전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마련, 추진할 때 자살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자살 예방은 정부, 지자체등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종교계의 협력이 이뤄진다면 큰 물살을 탈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 중 2200만명이 종교를 갖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종교의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 즉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종교 가운데서도 신도 수가 가장 많은 기독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의 주된 공감대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한 생명들이 자살로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는 현실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행진을 멈추게 하고 생에 에너지를 공급해 생명의 물결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단절된 지역공동체를 생명의 공동운명체로 바꿔 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 중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어려움과 고통에 빠져 희망을 잃은 신도들에게 ‘두드려야 열리고, 찾아야 구해질 것’이란 메시지를 끊임 없이 전달해야 한다.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도 필요하다. 경제적, 정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희망의 전화 1393’을 알려 준다면 위기 속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을 구해 낼 수 있다.
자살은 남은 가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안겨준다. 유가족의 상실의 아픔, 수치심, 두려움, 분노와 죄책감은 그들의 슬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고 슬픔의 과정도 다른 죽음보다 훨씬 복잡하고 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이다. 심지어 자살위험이 일반인보다 8배나 높은 유가족들이 교회에서도 수용 받지 못해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회는 사람들을 자살로부터 구하고 자살 유가족을 품어 안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역할은 다양하다. 대형교회는 자체적으로 상담센터를 갖추고 그 기능을 강화해서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유가족 지원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중소교회가 독자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어렵다면 지역사회복지관, 정신보건센터, 경찰서, 소방서, 병원, 장애인 및 노인복지관등과 협력을 꾀할 수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상담과 치유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를 보살피고 치유하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경주한다면 우리나라 자살율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