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 싶은 설교]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입력 2022-04-26 18:11

팔복의 네 번째 가르침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갈망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갈망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가지며 어떤 이는 성공에 대한, 어떤 이는 취직과 승진, 또 누군가는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을 갈망하고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부부관계가 회복되기를 갈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깊은 갈망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을 위한 갈망이 아니라 의에 대한 갈망을 가진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의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의와 공의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필요한데 세상에서는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나에게는 정의롭고 공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불의일 수 있고 나에게는 불의인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정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그 기준이 명확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고 잘못이 없는 상태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입니다. 그런데 이 의는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롭게 되고자 하는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의롭게 살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전자는 구원에 대한 갈망,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칭의’에 대한 갈망이고 후자는 칭의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성화’에 대한 갈망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고 잘못이 없는 의로운 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이 갈망이 우리를 회개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의에 대한 갈망이 없는 자는 구원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은 인간의 그 어떤 기준과 잣대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지만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의를 갈망하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그 분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칭해주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의롭게 되기를 갈망하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의롭다 칭해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은 의롭게 살고자 하는 갈망이 생깁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았기에 더욱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는 예배를 갈망해야 합니다.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을 쓴 기자는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헐떡이는 갈망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갈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님께 저의 삶을 맡깁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를 보면 말세의 특징들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와 욕심으로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복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복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방식으로 채워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잠언 4장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의 어려움이 울림이 되어 마음이 요동치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요동치는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에베소서 6장 14절에 나오는 의의 호심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할지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전체를 다스려주십니다.

여러분,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 자녀가 주리고 목말라하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를 갈망할 때, 의를 목말라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그들을 먹이시고 채우십니다. 창18장 16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그러면서 그는 그 땅에 의인 50명만 있다면 그 땅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땅에는 의인이 10명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의를 갈망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간구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하지만 기도의 내용에 앞서 누가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의를 갈망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10)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하나님의 의에 목말라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주시는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모두가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