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택은 한동훈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한동훈이었을 것 같다. 2차 내각 인선이 발표된 지난 13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을 때만 해도 ‘설마’ 했지만, 윤석열 당선인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을 갖고 있고 법무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 정립의 적임자….”
파격 인사가 아니라는 당선인의 첨언에도, 이것이 한 후보자를 고른 진짜 이유가 아님을 모두가 안다. ‘쓰고 싶은 사람을 쓴다’가 더 진실에 가까울 터다. 설사 한 후보자가 더불어민주당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무부 장관 자리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 그의 경력은 그의 탁월한 능력을 말해준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는 3차장, 검찰총장 때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보좌한 이가 한 후보자다. 두 사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불어닥친 삭풍을 함께 견뎌낸 동지이기도 하다. 윤석열정부에서 한 후보자 중용은 예정된 코스였다. 법무부 장관 직행은 놀라웠지만.
한 후보자 지명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드라이브와 연결 짓는 이들도 많다. 마침 인선 발표일도 민주당의 검수완박 당론 결정 이튿날이었다. 민주당의 돌진 기세가 만만치 않자, 검찰 수사권 폐지가 현실화된 상황에 대비한 ‘최종병기’로 한 후보자를 출격시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가동할 수 있는 상설특검은 검수완박 시대에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한 후보자에게 칼 대신 펜, 즉 인사권을 맡겨 검찰에서의 문재인정부 색깔을 빼는 작업을 맡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윤 당선인의 기질, 특유의 인사 스타일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본다. 당선인은 ‘친구’와 ‘동료’를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다. 인간적으로 가까워 속 터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라도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함께 일할 사람으로는 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능력주의 혹은 실용주의 용인술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 후보자는 ‘마음의 빚’보다는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가시밭길이 예고된 인사청문회를 헤쳐 나갈 전투력과 맷집, 언변에 대한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26년간 당선인 몸에 새겨진 검사 DNA가 여전히 발휘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당선인의 검사 시절 수사 스타일은 상대의 예측보다 몇 발짝 빠른 타이밍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허점을 찔러가는 식이었다. 속전속결로 우위를 점한 뒤 그 기세로 혐의 입증까지 내달리는 직진형 수사. 예상을 깬 한 후보자 인선에서도 당선인의 승부사 기질, 직진 본능이 전해졌다. 오랜 세월 주로 수사 대상으로 접했던 정치권을 여전히 돌파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당선인은 더 이상 검사가 아니고, 수사하듯 정치를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독립 투쟁하듯 법무행정을 이끌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당선인의 선택이 새 정부 출범도 전에 정국을 얼어붙게 했다는 점이다. 한 후보자에 대한 민주당의 반감은 무서울 정도로 거세다. 보복 수사 트라우마를 건드린 걸까. 172석 거대 정당이 연이어 무리수를 두며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는 조급함마저 느껴진다.
한 후보자는 결국 장관 임명장을 받게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사납게 물어뜯기긴 하겠지만. 대신 윤 당선인은 더 무거운 정치적 책임을, 한 후보자는 왜 한동훈이었는지를 내보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중요한 건 여론은 조급하고,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