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업들도 엔지니어 가뭄… ‘돈 더 줄게’ 인력 쟁탈 가속

입력 2022-04-22 04:04
국민DB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는 생산설비와 인력이다.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전문인력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 간, 국가 간 ‘인재 전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산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인텔 등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인력난이 심화될 것으로 관측한다. 상당수 기업이 미국 유럽 등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면서 인력 부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에 전문인력 확보는 생산설비를 갖추는 것만큼 시급한 ‘생존 문제’다. 21일 인재 채용 스타트업 ‘에이트폴드닷에이아이’에 따르면 미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신설·증설 계획을 맞추려면 2025년까지 약 7만~9만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인텔은 이달 초 3000여개의 구인 공고를 냈는데, 이 가운데 2700개가 낸드플래시와 파운드리 분야의 엔지니어를 찾는 공고였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내년까지 중국에서만 반도체 전문인력 20만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추정치를 발표했다. 한국은 향후 10년간 매년 1500명의 반도체 인력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사들도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확충하고 있다. 늘어나는 생산설비만큼 인력이 필요한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전문인력이 부족해 기업들이 비전문 인력을 뽑은 뒤 재교육과 훈련을 다시 시키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반도체 기업들이 연간 약 1만명의 인력을 채용하는데, 이 가운데 반도체 분야를 전공한 전문인력은 20% 이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만성적 인력 부족’이 계속되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인재쟁탈전에 뛰어들고 있다. 처우개선, 인센티브 확대 등으로 인재 모시기를 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임직원 임금을 예년의 2배 수준인 평균 8% 인상했다. 신입사원 초임을 삼성전자보다 높은 5040만원으로 올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인재 영입과 유출 방지를 위해 약 5만명에 이르는 전 직원에게 ‘자사주 매입 보조금 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직원의 자사주 구매에 회사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건 TSMC 창립 이래 처음이다.

대학 안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능력 있는 인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입도선매’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성균관대·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고려대를 시작으로 올해 서강대, 한양대와 잇달아 반도체 학과 개설 협약을 맺었다. 중국의 유명 대학들은 잇따라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있다. 2020년 11월 난징반도체대학이 문을 열었고, 지난해 중국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칭화대를 비롯해 선전기술대, 베이징대, 항저우과학기술대 등에서도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치했다.

박 학회장은 “대기업의 경우 대학과 연계 등으로 어느 정도 인력 충원을 할 수 있지만 반도체 생태계에서 허리를 형성하는 중소·중견 기업에선 사람이 부족하다. 전국적으로 반도체 학부를 신설 혹은 증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전성필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