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픔· 실험미술·단색화… 베니스 수놓은 한국 현대미술

입력 2022-04-22 04:05 수정 2022-04-27 18:20
세계 최대 미술제전인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이 23일(현지시간) 개막하는 가운데 한국 작가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전시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마련한 5·18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 ‘꽃 핀 쪽으로’ 전경.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이탈리아 베니스는 ‘물의 도시’다. 장례식장 앞 수로에는 장의용 ‘수상 리무진’이 대기 중이다. 이곳을 향해 노순택 작가의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영정 사진 작품 여러 점이 도열해 있다. ‘80년 광주’의 죽음을 담은 작품들이 베니스 시민에게 죽음의 공간인 곳과 마주하는 장면이 묘한 울림을 준다.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가 한국 현대미술 70년사로 물들고 있다. 20일(현지 시간) 프리뷰에 맞춰 1960년대 실험미술, 70년대 단색화는 물론 80년 광주의 상처를 담은 작품까지 동시대 미술이 소개되고 있다.

이날 베니스 스파지오 베를린디스의 전시장에선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특별전 ‘꽃 핀 쪽으로’가 개막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대표이사 박양우)이 주최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제6장 소제목에서 땄다. 80년 광주의 어두운 상처에서 벗어나 밝은 곳, 꽃 핀 쪽으로 이끄는 내용이 담긴 소제목처럼 전시는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치유하고 앞으로 내딛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시각화한다.

흥미롭게도 전시 장소가 있는 바다 건너편에는 베니스의 공동묘지가 있는 섬이 있고, 전시장이 있는 마을엔 관을 짜던 집들이 곳곳에 있었다고 박보나 큐레이터가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민중미술 작가 홍성담이 5·18 당시 시민들이 연대하던 모습을 담은 판화, 안창홍 작가가 근대기 가족사진을 수집해 인물의 눈을 가리는 등 변형을 가함으로써 시대사적 맥락을 만들어낸 아리랑 연작, 정치 집회 장면을 중세 회화처럼 형상화한 진 마이어슨의 유화 등 국내외 작가 11명의 작품이 나왔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2020년 시작된 특별전인데 타이페이, 서울, 쾰른, 광주에 이어 이번에 베니스를 찾았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현지를 찾는 전 세계 미술인들에게 광주의 의미를 알리려는 취지다. 11월 27일까지.

유서 깊은 팔라초 카보토에선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80) 개인전 ‘바디스케이프’(Bodyscape)가 이날 오픈했다. 신체의 풍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저항 의식을 담아 신체를 부자유롭게 한 뒤 패널 뒤에서 손을 뻗어 선을 긋거나 옆에서 긋는 등의 7가지 그리기 방법을 담은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이건용은 이후 이를 캔버스에 회화로 선보였는데, 이번 전시에선 새롭게 변주한 신작 20여점을 내놓았다. 7월 3일까지.

70년대 일련의 작가들이 선보인 이래 현재 미술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단색화 대표작가의 전시도 동시에 개막했다. 하종현(87) 작가의 개인전은 국제갤러리와 그 자매갤러리인 미국 티나 킴 갤러리, 베비라콰 라 마사 재단의 공동 주최로 팔라제토 티토에서 22일 개막한다. 회고전 형식으로 작가가 단색화를 시작하기 전에 전통적 요소를 갖고 작업하던 ‘도시계획백서’(67년)에 이어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접합 연작으론 배압법이 처음 시도된 70년대 어두운 색조의 작품부터 청자색을 구현한 최신작까지 폭넓게 나온다. 8월 24일까지.

베니스=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