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일상과 신앙공동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성도들이 대면 예배보다 비대면 예배를 선호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에서 예배하게 하셨던 의미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왕들 중 이스라엘 땅 도처에 있는 산당들을 없앴던 첫 번째 왕인 히스기야왕을 평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 중 산당을 제거했던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뿐입니다. 산당은 어떤 곳입니까. 본래 가나안의 야외제단으로 그 땅을 점령할 때 완전히 없애도록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불완전하게 점령하면서 그들의 제단의 문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법궤를 빼앗기게 되면서 사실상 성전이 없어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문화인 산당에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에 기브온에 산당에서 예배를 했을 만큼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의 처소는 이미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했습니까? 여호수아 22장에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강 언덕가에 제단을 쌓은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요단 서쪽의 10개 지파의 지도자들이 모여 요단 동편의 지파와 전쟁을 하려 합니다. 이때 이 제단은 예배를 위한 제단이 아니라 자신들도 요단 서편의 지파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 됨의 증거로 쌓은 제단이라고 말하여 ‘엣’ 곧 증거라고 명명합니다. 그럴 만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해지지 않은 다른 제단에서 예배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죄를 가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스스로가 왕이 되어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처소가 생겨나면 사람마다 자기의 편의대로 예배하며 말씀의 본질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결국은 우상을 숭배하는 제단과 동일하게 변하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산당들은 이미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놋뱀마저 이미 우상이 돼 있었습니다. 변질된 놋뱀은 그저 구리 덩어리일 뿐입니다. 산당들 역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 이미 우상의 제단이 되어 버린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훼파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 교회는 장소가 아닌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머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코로나 시대를 허락하셨을까요. 비대면 예배와 대면 예배를 병행하는 상황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건물이 아닌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회복하시기 원하셨다고 믿습니다. 건물이 아닌 믿음의 사람의 공동체 그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길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깨닫게 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온라인 예배는 함께 할 수 없는 아픔을 주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음도 함께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중앙 성소이고 택하신 곳입니다.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회복이 바로 우리의 택하신 온전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김덕현 성남 건강한교회 목사
◇건강한교회는 이웃과 나라와 영혼의 아픔을 함께 품고 기도하며 섬겨가는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