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돈은 돌고 돌아야 제맛이다

입력 2022-04-22 04:02

돈은 조용히 저 혼자 있고 싶다고 누군가의 주머니에 잠자고 있으면 안 된단다. 그래서 정부는 경제학자와 관리들을 활용해 돈이 잠자거나 숨어 있지 않도록 흔들고 비틀어 흘러가게끔 지략을 다해 세금을 거두고, 아니면 말고의 손실도 나 몰라라 집행하나 보다.

남편의 은퇴 즈음 나도 현직에서 떠날 것을 결심했다. 그 나이 되도록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돈도 모으지 않고 집도 무상으로 빌려 쓰다 보니 당장 집 지을 땅을 계약할 돈이 없어 막막했다.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절박했다. 토지 계약금부터 집의 완성까지 거의 개인에게 인격신용으로 빚을 내어 감당했다. 거참! 현직을 떠나리라는 결심은 물거품이 되고, 월급마저 한 푼도 못 쓰고 매달 꼬박꼬박 빚을 갚아가고 있다. 죄송, 이건 사설이고 본론은 다음이다.

주택 신축을 등록하러 가서야 비로소 실감한 큰 사실이 있었다. 만약 빚을 다 갚고 이 집이 진짜 내 소유가 된다면 하늘나라 가기까지 얼마간 머물러 살다 갈 이 거처가 내가 임의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되는 것이었다. 재산을 모을 마음이 도무지 없는데 어찌해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저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 장막을 마련한다고 동분서주했고 선뜻 돈을 빌려준 고마운 분들에게 빚 갚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장차 골몰해야 할 일이 생기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태어나 부모와 사회의 전적인 도움을 받고 성인이 됐다. 장성해 주어진 역할에 순종하며 게으르지 않기를 다그쳐 매일매일 일하고 겨우겨우 가족 의식주를 충당했다. 이제 퇴직금으로 마지막 거처를 마련하고 국민연금 생활에 대비해 익숙한 환경을 떠나 여건에 맞는 타지에서 노년을 살아가려는 국민 중 한 사람이 됐다. 사는 동안 어찌어찌 생긴 재산을 인생 말미에 어떻게 처분하고 빈손으로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내 소유 재산을 제대로 정산하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바로 골몰해야 할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살기 위한 질문이었다면 이제 죽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 셈이다.

알고 싶은 그것이 꼬리의 꼬리를 물더니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꽤 여러 날 맴맴 돌았다. 사회 환원, 직계자손 상속 등의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소신을 갖고 싶었다. 내 삶의 주관적 태도와 결이 같은 길을 찾고 싶었다. 윗세대로부터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받았으니 인생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개인 ‘나’는 ‘역사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재산을 내 뜻대로 내 식대로 다음세대에 전하면 되겠다 싶지만 국가 공동체는 이를 통제한다. ‘나의 결정’에 ‘그들의 판단’이 개입한다. ‘그들의 식견’은 나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이미 입법 돼 있어서 자유롭지 않다.

예수님은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네게 부족한 것’이 있다 하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다. ‘다 팔아’에 방점을 둔다면 동산 부동산을 막론하고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저는 가난한 자가 되고, 나누어 받은 가난한 자들은 재산가가 되고, 이들이 또 가난한 자가 된 이전 부자에게 주고… . 주고받고 또 주고받고를 계속한다! 상상일지 모르지만 난 거기서 어렴풋이 길을 찾은 듯하다. 주고받는 것이다. 고이게 하지 말고 묵히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주고받기를 하면 내 소유 재산은 어느덧 최소화되지 않을까? 그럼 굳이 죽기 전 남은 재산이랄 것이 없을 수 있겠다!

역사 공동체의 일원인 나는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주고받는 경제활동’을 지금부터 열심히 해볼 참이다. 목표는 이 땅을 떠날 즈음 남겨질 재산이 최소화되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돌아야 제맛이고 소금은 짜야 한다. 그렇게 지음받았다.

정애주 홍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