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구원의 해답’ 풀리지 않는 정답 찾아 헤매다… 하나님의 사랑 깨닫고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

입력 2022-04-25 03:04

어머니는 전도와 봉사, 희생의 삶까지 대단한 신앙의 열정을 지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머니가 존경스럽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도 퍼주기만 하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신앙생활은 늘 사람들을 위해 손해 보아야 하고, 하나님은 항상 돈과 시간을 요구하시는 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채 중학생 때는 교회 동생들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고, 주일 새벽예배에서 성가대로 봉사했다. 그러다 중3 때 어느 대학생이 예수님을 믿느냐고,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요.” 대답을 했지만 ‘나는 구원 받은 것이 맞나?’ 하는 고민으로 목사님과 상담을 해도 답을 얻지 못하고 힘들게 지내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입맛에 따라 교회를 옮겨 다니는 떠돌이 신앙생활을 했다.

결혼을 하고 성악가 꿈을 접으며 위기가 찾아왔다. 도전하는 직장마다 떨어지며 속은 까맣게 따 들어갔다. 너무 답답하여 결혼하면 끊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몰래 담배를 피우다 아내에게 들켰다. ‘당신은 교회에 다니면서 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 받으려고 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에 “당신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잘 모르겠어!”하며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 그 후, 아내를 통해 한마음교회 형님 한분을 만났다. ‘그래! 어차피 백수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고민해보자.’ 하며 교제를 시작했는데 말씀이 너무나 쉽고 명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같은 말씀을 전했다. “이 세상이 어둠인데 내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많은 것이 풀린다.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다.”며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부활이라고 강조했다.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이 선명해졌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 신앙의 기준이 된 어머니의 삶, 예수님 제자들과 같은 삶을 도저히 살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아 고민은 계속되었다.

7개월 쯤 지날 때 드디어 부활이 내게 실제가 되었다. “형님! 예수님의 제자들도 힘겹게 순교자의 삶을 살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갔겠지요? 저도 싫든 좋든 그 길을 한 번 가볼게요.” 했더니 형님은 “아니지, 그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 길을 간 거야!” 했다. 갑자기 늘 손해만 보는 삶, 돈도, 시간도, 생명까지도 내어드리는 삶이 어떻게 기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혼란스러웠다. 도저히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는 고민을 안고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새로운 각오로 다시 요한복음에 집중할 때 20장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21장의 생소한 말씀이 눈에 딱 들어왔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가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씀에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오해가 한순간에 풀어졌다. 예수님께서 내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사랑 뿐이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나를 지으실 때의 그 사랑을 회복시키고 싶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눈물을 쏟으며 그분을 내 마음에 진정한 주인으로 모셨다.

내가 드릴 것은 인생밖에 없었다. 도저히 저런 삶은 못 살겠다던 마음은 생명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마음으로 바뀌고, 미친 듯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공공장소 소란으로 공안에게 붙잡혀 간 적이 있다. 육하원칙에 따라 ‘김정일이, 2002년 0월0일에, 지하철 1호선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큰 소리로 기쁘게,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라고 진술서를 쓰는 마음이 너무 기뻤다. 그런 열정에 열매도 생겼다. 나를 핍박하던 모태신앙인 친구가 그동안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나보다 더 뜨거워졌고, 중·고교생 5명을 양육했는데 그 중에 두 명은 지금 전임사역자가 되었다. 교회 찬양사역자로 섬기며 틈나는 대로 소년원에도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복음을 들었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곳을 나가게 되면 선생님처럼 복음을 전하며 살게요.” 하는 감동의 편지도 받았다. 교회를 다니다 상처를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버지는 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우리 교회 지체들의 사랑으로 마음이 활짝 열렸다. 임종 얼마 전에는 멀리 우리 교회가 보이는 춘천의 병원으로 오셔서 주일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 말씀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다 편안히 주님 품에 안겼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구원을 받는 것인지 풀리지 않는 정답을 찾아 헤맸던 내가 지금은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든 삶을 드리며 달려간다.

김정일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