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종이 울리자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창가에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셨다. 그렇게 침묵의 십여분이 지났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서른이면 모든 잔치는 끝났다네.” 선생님은 다시 텅 빈 눈길로 창밖을 응시했다. 그 당시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왜 내가 서른이 될 때에 그리고 마흔이 될 때에도 선생님의 그 텅 빈 표정과 그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일까?
나중에 찾아본 최영미 시인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는 사실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순수성에 대한 비판의식이 들어있다. 80년대를 살아온 많은 대학생이 일상에 자리를 잡는 30대가 되며 열정과 치열함에서 일상으로 굴절될 수밖에 없는 모습을 그린 시집이었다. 시의 내용을 떠나 실상 이 제목이 주는 가슴 철렁함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곡의 가사처럼 삶의 무게가 청춘을 압도하고 난 뒤의 허무감 때문일 것이다. 갓 서른을 넘겨 이제 막 한 아이의 아빠가 됐던 선생님에게 이 문장은 날카롭게 와 닿았을 것이다.
더 이상 열정만을 좇을 순 없어도, 사랑 때문에 죽을 만큼 아프다가도 또다시 마음이 두근거릴 수 있는, 지금 나의 현실은 대단치 않지만 내 인생에 멋진 무언가를 해낼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남아 있는…. 언젠가 끝날까 봐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잔치’라는 단어가 최소한 내게는 이런 의미로 느껴졌던 것 같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간된 지 25년 넘게 지났다. 예전 서른 살이 이젠 마흔이야 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거의 십년이 돼 간다. 서른 살에 20대를 아쉬워할 순 있어도 잔치가 다 끝나버린 철렁함을 느끼기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로맨틱 코미디나 액션 영화 주인공들도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영화 ‘테이큰’(2008)에서 50대 액션 배우로 필모그래피의 영역을 넓힌 리암 니슨은 아저씨 액션에 돌풍을 일으키며 69세인 현재에도 여전히 액션 영화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당시 노처녀로 그려졌던 32살 브리짓의 로맨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는 15년 후인 2016년에 4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싱글인 브리짓이 마침내 결혼과 출산을 하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로 돌아왔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여성들에게 너무 큰 사랑을 받았던 TV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도 최근에 ‘앤드 저스트 라이크 댓’(2021)이라는 리부트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TV시리즈 종영 이후 영화 ‘섹스 앤 더 시티’(2008)에서 주인공 캐리는 드라마 시즌 내내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던 운명의 상대 미스터 빅과 결혼하며, 그녀의 사랑 찾기가 40대에 마침표를 찍은 듯했다. 그런데 14년 만에 돌아온 리부트 시리즈에서 캐리는 56세가 됐고, 50대가 된 캐리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소위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50대의 사랑을 다룬다니 낯설게 느껴질 순 있지만, 사실 사랑이란 몇 살에 시작해 몇 살에 끝나는 것이 아니긴 하다. 그리고 20살이라고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롭기엔 현재의 세상이 훨씬 더 팍팍해졌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결혼·출산과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며 나이에 대한 인식과 편견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모든 다양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같은 사회적 통념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래서 ‘나이’란 때로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30대 당대표가 나오고 MZ세대를 임원으로 발탁하는 세상, 동시에 70대가 여전히 요직에서 활약하고 아카데미상을 받는 세상이다. 나잇값은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나이라는 숫자에 휘둘려 나의 잔치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차기 정부가 만 나이를 도입하면 잃어버린 2년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2년을 되찾는다면,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선영 CJ ENM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