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작은 냉장고 사용법

입력 2022-04-22 04:07

10년 동안 사용 중인 237ℓ짜리 냉장고가 있다. 대학생 때 구입한 후로 큰 고장 없이 써왔고, 이 정도면 내 식생활에도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사는 이가 생기면서 냉장고가 점점 작게 느껴졌다. 각자 취향에 따라 넣어두고 싶은 식재료와 음식이 있었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는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시간도 늘어서 공간이 부족해졌다. 이러던 차에 지인이 냉장고를 준다기에 바꿀 생각도 해보았지만, 바꾸는 대신 사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일단 냉동실에는 부피가 큰 음식을 오래 둘 수 없으니 냉동식품은 되도록 사지 않았다. 기념일에는 크기가 작은 케이크를 사고, 냉장실에 넣을 식재료나 채소는 여러 번 나눠서 장을 봤다. 그리고 요리할 때는 최대한 2인분에 맞춰서 했다. 손이 큰 나에게 찌개나 국의 양을 조절하는 일은 가장 바꾸기 어려운 습관이었는데, 여러 번 시도 끝에 양은 조금씩 줄었다. 또 음식은 되도록 소분해서 반찬통에 넣어두고, 절반 이하로 양이 줄어들면 더 작은 반찬통으로 옮겼다. 어쩌다가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했을 때 3개 이상 반찬통이 필요하면 일부는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이렇게 2년을 사용하다 보니 작다고 느꼈던 냉장고에는 그럭저럭 여유 공간도 생겼고, 신선한 식재료로 채워졌다. ‘내가 매일 무엇을 먹는지’ ‘이것들은 어디에서 오는지’,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오랫동안 냉장고를 써왔지만 이제야 냉장고의 쓸모를 제대로 활용한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 정도면 제법 냉장고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다. 살면서 점점 필요한 것들이 늘어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생활 양식이 바뀌고 환경도 변하면서 공기청정기나 김치냉장고가 필수품이 된 것처럼 말이다.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느껴지는 소비사회에서, 이 냉장고와 얼마나 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을 더 같이 할 수 있을까.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