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상의 여론, ‘댓글’은 과연 누가 쓸까. 국민일보가 2019~2021년 네이버 포털사이트의 댓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댓글의 절반가량은 4050 남성이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여성보다 3배나 많은 댓글을 쓰면서 온라인 여론을 주도했다. 여성을 댓글 세상으로 불러들인 것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갈수록 흉악해지는 아동·청소년 범죄였다. 자신이나 가족의 안전과 관련된 이슈에 여성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면서 결집했다.
댓글 창은 누구나 쓰는 열린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이슈에 따라 댓글 쓰는 사람의 성별과 연령은 달랐다. 특정 계층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고 그로 인한 여론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댓글 여론에 대한 맹목적인 동조를 경계하고, 그때그때 다른 댓글 여론의 실체를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댓글 ‘절반’은 4050이 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부터 위드코로나 막바지에 다다른 2021년까지 3년간 가장 많은 댓글을 작성한 연령대는 40대로 확인됐다. 네이버가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성별·연령에 따른 댓글 작성 수 및 작성자 수’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3년간 연평균 작성 댓글수는 1억4969만3176개였는데 이 중 40대가 작성한 댓글은 4855만7052개로 32%에 달했다. 네이버 댓글 3개 중 1개는 40대가 썼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연령별 통계를 보면 40대에 이어 50대, 30대, 60대, 20대, 70대 이상, 10대 순으로 댓글을 많이 작성했다. 뒤를 이어 50대와 30대가 각각 26.5%, 20%로 나타났다. 40대가 작성한 댓글수는 평균적으로 20대가 작성한 댓글수의 약 5배에 달했다.
나머지 연령대는 10%대이거나 한 자릿수 비율이었다. ‘너 초등학생이지’라며 10대 댓글러를 의심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작 10대의 댓글 작성 건수는 3개년 평균 118만7251개로 전체 댓글 중 0.79%에 불과했다.
연령과 성별까지 구분한 통계 분석 결과 40대 남성이 22.9%의 비율로 전체 댓글 대비 가장 많은 댓글을 작성했다. 50대 남성(20.0%), 30대 남성(14.8%)이 뒤를 이었다. 4050 남성이 작성한 댓글수는 전체 대비 43%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어 60대 남성(9.51%), 40대 여성(9.45%)이 댓글을 작성했다. 작성 비율 상위 5위 안에 드는 이들이 전체 댓글의 77%를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별로만 보면 댓글은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썼다. 지난 3년간 작성된 댓글 작성자의 남녀 비율은 평균적으로 75대 25로 집계된다. 남성이 작성한 댓글수가 여성보다 3배나 되는 것이다.
‘4050男’, 커뮤니티→ 댓글창으로
4050 남성의 댓글 작성 비율이 독보적인 이유는 이들이 사회활동을 하고 현실에서도 정치 관여도가 높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보다 직장에서 책상에 앉아 늘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사무직 남성들의 댓글 작성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해당 연령대 남성들이 가장 활동적으로 일하고 사회적 위치를 차지한다”며 “직장에서도 일로써 가장 큰 성과를 낼 시기이고 가정에서도 주도적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나이다. 모든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이다 보니 자신들의 의견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댓글에서도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050 남성들의 댓글은 특히 정치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통령 선거 경선이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난 3월 대선 때까지 이들의 댓글수는 급증했고, 지난 2~3월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 3월 정치 분야 댓글의 경우 40대 남성이 229만8758개, 50대 남성은 249만1355개를 쓴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댓글수는 1115만6639개로, 지난 3월 네이버 정치 분야 뉴스에 달린 댓글 10개 중 4개는 4050 남성이 썼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댓글 창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기저에 20대 초반부터 온라인 문화를 접하고 누린 세대인 데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직접 구축한 경험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싸이월드를 비롯해 보배드림, 엠엘비파크, 에펨코리아, 클리앙 등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축으로 활동해봤기 때문에 댓글 작성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2030세대가 점령한 커뮤니티에서 밀려나면서 의사 표현의 공간을 포털뉴스 댓글 창에서 찾았다는 분석도 있다.
여성 들, 특정 이슈엔 ‘입’ 열었다
남성과 달리 댓글 창에서 목소리 내기에 소극적이던 여성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댓글로 의견을 표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여성들은 본인의 가족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슈, 안전 관련 이슈에 적극적으로 댓글을 작성했다. 이와 같은 경향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작 전인 2019년 대비 2020년 댓글수 증감률을 보면 남성은 22%에 그쳤지만 여성은 46.6%에 달했다.
이슈에 따른 댓글수 폭증은 3050 여성 통계에서 두드러졌다. 이들이 작성한 댓글수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크게 ‘5번’ 급증했다. 2020년 3월 3050 여성의 댓글수는 542만개로, 2019년 3월 186만개에서 3배가량 증가했다. 이때는 대구에서 신천지증거장막(신천지)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했던 시기다. 같은 기간 3050 남성의 댓글 수가 1.7배 증가한 수준에서 멈춘 것을 고려하면 3050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3050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을 때는 2020년 12월로, 전년 동월 대비 댓글수가 2배 증가했다. 코로나 3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자녀들의 등하교 문제가 두드러졌던 시기다. 여기에 8세 여아를 성폭행했던 흉악범인 조두순 출소 뉴스가 연일 화제였다. 그다음 달인 2021년 1월에도 3050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때는 8개월 여아 정인이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이 터졌던 시기다. 당시 2019년 동월 대비 2021년 댓글수는 1.7배가량 늘었다.
황용석 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육아와 건강에 대한 문제는 여성들에게 중요한 어젠다”라며 “특히 자녀 건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코로나 시기, 아동 및 청소년 범죄 사건이 있던 시기 댓글이 폭증했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들의 해당 이슈에 대한 응집력이 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5000명대를 넘고 위중증 환자가 급증하는 등 의료대응체계가 사실상 붕괴 직전에 달했다. 정부가 위드코로나 철회를 발표하면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우려는 극에 달했고, 이런 불안은 댓글 창에 그대로 나타났다. 이때 2019년 동월 대비 2021년 댓글수는 약 2배나 증가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정치 이슈에 목소리를 덜 내는 편이었지만 지난 대선 때는 조금 달랐다. 대선이 치러진 3월 3050 여성은 댓글 창에서 활발한 참여를 보이며 2019년 동월 대비 댓글수가 2배가량 늘었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고, 이로 인한 남녀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당시 갈등이 격화하자 전체 성별·연령 중 20대 여성이 두드러지게 댓글로 응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20대 여성의 정치 분야 댓글 수는 23만3640개로 2021년 동월 2만9972개의 10배에 육박했다. 여가부 폐지가 여성 인권을 과거로 회귀시킬 것으로 보여 본인의 삶에 직결되는 이슈가 되면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1인 1보이스가 제대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은영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온라인 미디어에선 4050 연령층의 목소리가 과대 표현되고 요양병원 노인들, 어려운 처지의 청소년처럼 다른 연령대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닿지 않는다”며 “미디어 수용자들이 댓글을 보고 이게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경연 김나래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