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최근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막내딸 미정(김지원 분)의 대사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 외곽에 사는 삼남매가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방영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대사들이 나온다. 카드회사에서 디자인팀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는 미정은 사람과의 관계에 지친 나머지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고독함을 느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라고 덧붙인다.
첫째 딸 기정(이엘 분)은 “아무한테나 전화 와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 존재하는 척 떠들어대는 말 말고, 쉬는 말이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의무적인 대화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쉬는 말’이란 위로하는 말, 힘이 되는 말일 것이다. 심호흡을 하면 평안해지듯이, 말하면 편해지는 말이 쉬는 말이 아닐까. 사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것도 이런 ‘마음의 언어’(쉬는 말)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반대로 누군가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또한 설렘과 기쁨을 주기도 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반면 엇나간 언어의 힘은 누군가의 분노를 자아낼 수도 있다.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 위로가 되는 따뜻한 언어, 상처가 되는 차가운 언어, 마음을 담지 않은 미지근한 언어 등이 있다. 이런 언어의 온도에 따라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냉랭해지기도 한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은 삶, 가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갇힌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면 마음의 언어를 써보자. 사람들은 삶이 힘겨울 때 뭔가 비범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나를 치유하는 언어, 관계를 이어주는 언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언어를 사용해 보자. 선한 말은 마음이 상한 것과 몸이 병든 것을 치료할 뿐 아니라 관계도 치료한다. 선한 말은 마음이 상한 사람이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이다. 침묵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어색한 침묵을 피하고자 하는 말들은 공허하다. 말을 많이 해서 호감을 사려하기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현명하다. 선한 말은 사람을 치료하지만 악한 말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함부로 하는 말, 독한 말, 날카로운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시 140:3)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내뱉는 형식적인 말들은 상대를 외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암으로 입원 중인 사람에게 “힘내서 암과 싸우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곧 나을 거예요” 하는 말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인내뿐입니다”라는 말이 더 힘을 준다. 또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 내용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 건강한 대화의 기본 자세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표현해야 한다.
만약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언어 처방전’을 써보자. 힘이 되는 명언, 성경을 읽으며 눈에 담았던 구절, 마음에 와 닿는 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나를 위로해주는 명구들을 잘 챙겨뒀다가 목록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힘들 때마다 그 문장을 되새긴다면 한결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플 때 약을 먹는 것처럼, 힘들 때 꺼내서 반복할 수 있는 말들을 갖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마음을 울리는 말은 뇌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혼자가 돼서 불안할 때, 외로울 때,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당할 때, 이런 말들을 갖고 있으면 그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언어는 힘이 세다. 한마디 말로 축 처진 어깨를 세울 수 있고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 반면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용기를 꺾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강력한 무기가 나에게 있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