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마저… “문송합니다”

입력 2022-04-23 04:04

지난해 첫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나타난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이 대학 평판을 보여주는 비공식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이과생들의 문과 진학 비율이 높을수록 더 좋은 대학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적성과 무관하게 수학 성적을 앞세워 문과로 들어온 학생이 달갑진 않지만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평판도 무시하긴 힘들어 대책 마련에 신중한 모습이다. 문재인정부 5년간 되풀이된 대입 정책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학가 신(新)풍속도란 평가도 나온다.

이과생 비율 높아야 명문대?

종로학원이 2022학년도 정시합격자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대 인문계열 합격자의 44.4%는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 혹은 기하를 선택한 이과 성향의 학생이었다.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수학에서 고득점을 획득한 이과 성향 학생들이 전공보다는 서울대라는 ‘간판’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거점국립대 중 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대로 26.6%였고, 부산대와 전북대도 각각 15.5%, 12.8%로 그 뒤를 이었다(표 참조).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 중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들의 이과생 비중은 대략 절반 수준, 서울 중하위권 대학의 경우 30% 수준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대학을 한 차례 ‘서열화’한 적이 있다. 정시비율을 40% 이상 선발하도록 강제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16개 대학을 정부 공인 ‘주요 대학’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 16개 대학이 주요 대학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부 대학이 “왜 우리는 포함하지 않는가”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험생 사이에선 정시비율이 높고, 이과생이 많은 순으로 좋은 대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기는 분위기다.

인문계열 학과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이과 성향이었던 학생들이 취업에 불리한 인문계열 전공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공부할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반수’(대학 재학 중 대입 재도전)를 통해 ‘문과 탈출’을 모색할 가능성도 크다. 대학의 유지충원율(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재학생·신입생 충원율)은 대학 평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문과 침공’이 활발했던 대학을 중심으로 반수생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중간고사 응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반수로 빠져나가는 걸 잡기 위해 학부모 설명회라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인문계열에 대한 열의가 약한 학생이 수학 점수를 앞세워 해당 전공을 공부하려는 학생의 진학 기회를 뺏는 상황이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크다. 교육부의 대입 제도 설계가 잘못됐다는 성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과형 수학까지 공부하는 문과 상위권

올해는 처음으로 이과형 수학 응시자가 문과형 응시자보다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전까진 반대였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 첫해였던 지난해 수능에서 미적분 선택 비율은 39.7%, 기하 8.6%였다. ‘확률과 통계’는 51.7%로 문과형 선택 비율이 약간 높았다. 지난해 3~10월 치러진 시·도교육청 주관 학력평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평가를 보면 이과형 수학 비율이 꾸준히 상승한 걸 알 수 있다(표 참조). 지난해 3월 학력평가에선 미적분 33.7%, 기하 5.8%, 확률과 통계 60.5%였다. 문과형과 이과형이 6대 4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실제 수능에선 5대 5 수준으로 동등해졌다.

올해 3월 시·도교육청 학력평가에선 미적분 선택 비율이 39.1%, 기하 4.1%, 확률과 통계 56.8%였다. 미적분 비율이 지난해 3월 학력평가보다 5.5% 포인트 높아졌다. 확률과 통계는 3.7% 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고2였던 올해 고3은 미적분 응시가 대입에 유리하다는 걸 지켜봤다. 지난해 수능에서 미적분 만점자(표준점수 최고점)는 147점, 확률과 통계는 144점을 획득했다. 모든 문제를 다 맞혀도 선택과목에 따라 3점 차이가 발생했다. 상위권 대학 정시모집에서 3점은 큰 격차다. 지난해 겨울방학 혹은 평가원 주관 첫 문·이과통합형 수능 모의평가가 시행된 6월 이후 문과 상위권이 이과형 수학으로 갈아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올해 3월 학력평가에서도 미적분 만점자는 164점, 기하 165점, 확률과 통계 158점으로 점수차는 여전했다. 수능 모의고사가 거듭될수록 지난해처럼 이과형 수학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재수생과 반수생이 가세하는 수능에서는 이과형 응시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성호 대표는 “올해 3월 학력평가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최상위권 외고, 전국 단위 자사고에서 확률과 통계 만점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며 “수능 고득점자가 많은 이런 학교에서 수학 만점자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상위권 학생들이 수학에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과형 수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어에서도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가 나타난다. 지난해 수능부터 국어는 ‘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을 선택하도록 했는데 언어와 매체 점수가 더 높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수능 표준점수 최고점은 언어와 매체 선택인원이 149점, 화법과 작문은 147점으로 2점차였다. 지난해 3~10월 치러진 학력평가 및 모의평가에서 발생한 점수 차이는 3~6점이었다. 지난 3월 학력평가에서는 5점 차이가 발생했다. 모든 문항을 맞혀도 응시하는 선택과목에 따라 점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언어와 매체 응시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3월 학력평가에서 언어와 매체 비율은 26.4%였는데 지난해 수능에선 30%, 올해 3월 학력평가는 34.7%로 집계됐다. 현재 고3은 물론이고 예비 수험생인 고2와 고1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수학은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이란 명분이라도 있지만 국어는 왜 ‘공통+선택과목’ 체제로 수능 제도를 설계해 대입에서 불확실성을 높였는지 알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