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이 미래 자원으로 떠오른다. 석유화학기업들은 잇따라 재활용 플라스틱에 투자하고 있다. 각국의 환경규제에 고유가 상황이 맞물리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다른 기업과 손을 잡고 ‘자원 선순환 플랫폼’을 구축한다. 일종의 공급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재활용 플라스틱=신성장동력
20일 업계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친환경 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석유화학 기반의 플라스틱을 그린 소재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체질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다. SK케미칼은 재생 원료를 사용한 제품 판매 비중을 2025년 50%, 2030년 100%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 증가에 대비해 국내에 구축된 생산 인프라를 해외 주요 거점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도 재활용 플라스틱에 눈길을 주고 있다.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 100만t 이상 판매 달성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술 확보, 설비 구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울산2공장에 약 800억원을 투자해 11만t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5조원을 들여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도시유전’ 사업을 본격화한다. LG화학은 원천 기술을 보유한 영국 무라테크놀로지와 협업해 2024년 1분기까지 충남 당진에 연 2만t 규모의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짓는다.
폐플라스틱 재조명 5년도 안 돼
석유·화학 기업들이 재활용 플라스틱에 관심을 보이는 건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유가와 연관이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새로 생산하는 것보다 2~3배 비쌌는데, 그 가격 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다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각국의 환경규제도 빡빡해지면서 재활용 플라스틱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석유화학 회사들이 폐플라스틱 자원순환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 시장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5년도 안 된다”며 “화장품 회사, 음료회사 등에서 재생 원료를 사용한 용기를 쓰겠다고 친환경 선언을 하면서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비중을 늘리고,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7월에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 폐기물 1㎏당 0.8유로를 부과하는 걸 골자로 하는 ‘플라스틱 세금’을 채택하기도 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도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점차 늘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세계 각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진출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455억 달러였던 전 세계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의 규모는 2026년 6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연평균 7.5%에 이르는 성장률이다.
“자원순환 위한 플랫폼 구축”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해선 이물질 없고 상태가 깨끗한 폐플라스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자원 선순환 플랫폼’이 중요하다. LG화학은 국내 스타트업인 이너보틀, 물류회사 CJ대한통운과 업무협약을 맺고 ‘소재-제품-수거-재활용’으로 이어지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LG화학이 제공한 플라스틱 소재로 이너보틀이 화장품 용기를 만들고, 다 쓴 용기는 대한통운에서 회수한 뒤 다시 LG화학과 이너보틀이 원료 형태로 활용하는 식이다.
금호석유화학은 hy(옛 한국야쿠르트)와 손을 잡고 폐플라스틱 음료용기를 합성수지 제품의 원료로 활용한다. hy는 고객이 사용한 용기와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한 불량 용기를 수거·선별해 제공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원 선순환을 위한 기업의 플랫폼 구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협력을 기반으로 각 참여 기업들이 서로 윈윈하는 모델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