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 곤란’ 굴 껍데기, 의약품·화장품 원료로 ‘화려한 변신’

입력 2022-04-23 04:08
경남 통영시 인근 해상에 지난해 3월 굴 껍데기가 쌓여 있는 모습. 국내 육상이나 해상 집하장, 굴 가공장 주변에 보관 중이거나 방치된 굴 껍데기는 모두 92만t 이상으로 추정된다. 해양수산부 제공

버려지는 굴 껍데기는 연간 30만t에 육박한다. 비료나 사료로 처리되지 않는 물량은 지금까지 방치됐는데, 육지나 해상에 처리되지 않고 쌓여 있는 굴 껍데기만 92만t 이상으로 추정된다. 불법 투기로 인한 방치량도 상당하다. ‘골칫거리’ 수산부산물을 오는 7월부터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난해 제정된 수산부산물법이 7월 21일 시행을 앞두면서다.


수산부산물은 먹을 수 있는 수산물 외에 남는 뼈나 껍질, 껍데기 등을 일컫는다. 굴, 전복, 홍합, 꼬막, 바지락, 키조개 등의 껍데기가 대표적이다.


22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수산부산물은 국내에서 연평균 115만t이 발생한다. 그간 수산부산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비료나 사료의 원료로 쓰이거나 그대로 버려졌다. 대표적 수산부산물인 굴 껍데기는 비료나 사료로 60%가량만 쓰였고, 40%는 보관되거나 방치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수산부산물을 해양에 투기하도록 허용했지만 사료나 비료 등으로 재활용보다 폐기 비용이 더 비싸 처리가 원활하지 않았다. 또 소각이나 매립도 검토했지만 지역민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다.

수산부산물은 쉽게 변질되고 산패돼 기존 폐기물 처리 공정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웠다. 부산물에 포함된 염분 때문에 매립이 쉽지 않았고, 이 때문에 육상이나 해상에 방치되는 일이 빈번했다. 불법 투기 방치, 폐수나 악취로 정부 예산이나 행정력이 소모적으로 투입되는 일도 반복됐다. 방치된 굴 껍데기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벌레로 지역주민들과 굴 가공장과의 갈등도 심각했다. 제철소에서는 굴 껍데기의 탄산칼슘을 석회석 대체재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기존 폐기물관리법 규제에 막혀 재활용을 접어야 했다. 수산부산물 처리와 재활용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에서 수산부산물법 발의 절차가 진행됐고, 지난해 본회의를 거쳐 시행을 앞두고 있다.

화장품·의약품·시멘트 원료로 사용

수산부산물을 재활용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화장품이나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거나 시멘트 원료로도 쓸 수 있다. 가공을 거쳐 식품용 첨가제나 치아미백제로 활용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패각 가공 업체인 여수바이오가 굴 껍데기를 재활용해 석회 분말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통영, 거제, 여수 등에서 굴 껍데기를 수집해 세척하고, 400~500도 온도에서 건조해 수분과 염분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산화칼슘이나 수산화칼슘을 굴 껍데기 재활용으로 대체 생산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석회석과 화석 에너지 사용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수산부산물에는 칼슘, 철분, 단백질, DHA 등 성분이 함유돼 있어 재활용, 자원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굴 껍데기는 석탄화력발전에서의 탈황 재료, 하수처리시설의 수질 정화, 연안 오염 퇴적물 개선, 연안·하천의 악취 저감 재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수부는 연구용역을 발주해 굴 껍데기뿐 아니라 다양한 수산부산물을 바이오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어류 뼈, 어피, 비늘, 연골에서 추출한 해양 콜라젠 등이 대표적이다. 수산부산물을 의약 원료나 건강 기능성 식품, 기능성 화장품 등으로 활용해 산업화하는 방안을 기대하고 있다.

방파제·해양 수질 정화에도 활용

해외에서는 이미 수산부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굴 껍데기를 원료로 플라스틱을 만들거나 건설자재, 식품첨가제, 아스팔트 포장재 등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김을 양식할 때 필요한 사상체 배양에도 활용하고 있다. 굴 껍데기가 소형 생물의 서식 환경을 조성해 양식장 어장 환경 개선에도 역할을 하고, 식물 플랑크톤 제거로 수질 정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굴 껍데기로 방파제를 만드는 곳도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는 굴 껍데기로 방파제를 만들어 해안 습지의 침식 속도를 절반으로 줄였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해수면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굴 방파제를 시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홍수를 막기 위해 굴을 이용한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2014년부터 굴 방파제를 만든 방글라데시는 해안 침식이 이전보다 54% 감소했다고 밝혔다. 자연 방파제가 본연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연안 수질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미국에서는 굴 껍데기를 해양에 살포해 수질을 정화하는 데 활용한다. 굴은 물속 유기물과 미생물을 빨아들인 뒤 깨끗한 물을 내뱉는데, 하루에 약 190ℓ를 정화할 수 있다. 녹조를 발생시키는 질소도 흡수해 껍데기에 저장한다. 미국은 체사피크만 인근에 25억개의 굴 껍데기를 뿌려 해양 정화와 암초 복원 등에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굴 껍데기 등 수산부산물 재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정부는 법령으로 수산부산물 재활용에 대한 지원을 명문화해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수산부산물법에 따라 앞으로는 수산부산물 재활용 통계와 분리배출 절차도 체계적으로 관리될 전망이다. 연간 수산부산물 발생량과 처리 실적을 집계해 재활용 통계에 사용하고, 수산부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시설을 설치하는 데 재정도 지원된다. 정부는 수산부산물 재활용 제품 판로 확대를 위한 지원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