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입력 2022-04-22 03:0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시대에 로마인들은 군사력으로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팍스 로마나 Pax Romana’라고 했고, 일본이 힘으로 우리나라 땅을 빼앗았을 때 ‘팍스 자포니카’(Pax Japonica)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평화했나요? 힘을 사용해서 강제로 하나로 만드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불의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했던 첫 인사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 20:19)이었고, 제자들을 다른 곳에 보낼 때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요 20:21)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화를 기도했지만, 그들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가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할 때의 ‘평화’는 거짓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는 싸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싸움은 눈앞의 전쟁을 당장 막는 것이 아닌 전쟁과 갈등의 뿌리가 되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싸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27)라고 했듯이, 우리가 바라는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 즉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입니다.

많은 사람은 “만약에 전쟁과 갈등이 없으면 모든 것이 좋아질텐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이 문제입니다. 전쟁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과 싸움은 단지 자신이 하는 내면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입니다. 내면이 편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불편함으로 혼자서 힘들어하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들어내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내적으로 긴장되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다른 누군가와 싸울 준비가 된 것입니다. 싸움과 갈등이 일어나면 옆의 누군가에게 덤벼들게 되며, 다른 누군가를 향해 책임을 넘기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그런 값싼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실 때, 분명히 무언가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갈등과 분열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칼을 주려고 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그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세상의 칼’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다른 차원의 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 칼을 휘둘러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해 그 칼을 써야만 합니다. 그 칼에 의해 둘로 갈라져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이 세상과 하늘나라가 만나기 때문에, 예수는 우리를 둘로 조각내기 위하여 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우리를 조각낼 때,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땅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평화가 꽃 피워 납니다.

이순임 목사 (올리브나무프로덕션 대표)

◇한양대 교목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올리브나무프로덕션 대표로 영성도서 출판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