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미국 정부는 5월 21일쯤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이르면 5월 20일에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5월 10일)한 지 불과 열흘 또는 열하루 만에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셈이다.
‘용산시대’ 이후 첫 정상회담인 만큼 윤 당선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 장소 및 이동 방식, 식사 자리까지 모든 프로토콜을 새로 짜야 한다. 회담 의제를 정하고 구체적인 합의문을 만들기 위해 새 정부의 입장이 담긴 대외정책을 완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을 자제시킬 구체적인 복안도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
교통 통제와 경호 등 난제 많아
청와대 시절에는 정상회담을 본관에서 하고 오찬이나 만찬을 영빈관에서 하는 등 모든 게 청와대 영내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3의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국방부 본관에 꾸려질 임시 대통령 집무실은 손님맞이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현재로선 회담 후보지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는 용산 집무실 근처 장소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컨벤션센터와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등이 거론된다. 환영 행사와 오찬, 만찬 모두 회담이 열리는 곳과 같은 공간에서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용산 일대 교통 혼잡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측 수행원들까지 대규모로 이동해야 하므로 상당 시간 교통 통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출퇴근 시간을 피해 회담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경호 문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용산 일대의 고층 건물이 문제로 지목된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인근 아파트 창문에서 망원렌즈로 참석자들 얼굴이 식별되고 이들을 저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창문을 못 열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파트 층마다 경호원을 배치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통상 정상회담 때 하던 군악대 의장 행사도 생략되거나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경호와 의전, 촉박한 준비 시간 등을 감안해 청와대 영빈관 사용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괄적 동맹 청사진…중국 반발 가능성
한국 대통령의 방미보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먼저 이뤄지는 것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 이후 29년 만이다. 정권 출범 후 보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성사되는 이번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과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협의체 ‘쿼드’ 참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듣고 이를 쿼드 회원국들과 논의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 참석 전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 대통령의 첫 동아시아 순방에서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셈이다.
향후 5년간 한·미 관계의 초석을 다지는 이벤트인 만큼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을 보다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활성화와 같은 군사 부문부터 공급망 등 기술·경제 부문까지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의 격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협력 대상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북한보다 쿼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의 협력이 우선순위”라며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하는 역내 경제협력 구상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도 한국의 참여를 적극 요청할 수 있다고 봤다.
한·미 밀착에 민감하게 반응할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 해협’으로 에둘러 표현한 게 중국이 받아들일 마지노선일 테고, 중국을 특정하는 구체적 조치가 나오면 크게 반발할 것”이라며 “미국에 완전히 경도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위협 저지할 새 ‘레드라인’ 필요
날로 심각해지는 북한의 위협을 저지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이번 회담의 중요한 의제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최근 평소보다 긴 4박5일간의 방한 일정을 잡고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 새 정부 인사들을 두루 만난 것도 정상회담 조기 개최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미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한 북한이 7차 핵실험까지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사드(THAAD) 추가 배치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등이 회담 테이블에 오를 수도 있다.
중·러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대북 추가 제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미가 뾰족한 수를 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현안이 산적해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미국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 ICBM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미국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배경 중 하나”라며 “한·미가 ‘레드라인’을 새로 긋는 등의 노력을 통해 미국이 중단거리미사일 도발에도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선 신용일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