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면 5만원 벌고 안깔면 2만원… 택시 ‘지지기’ 극성

입력 2022-04-20 00:03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18일 자정을 넘긴 시간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빈 택시에 모여들고 있다. 거리두기 해제로 늦은 시간 술자리가 늘어난 가운데 불법 택시 앱 '지지기'까지 성행하면서 심야 택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정모(30)씨는 19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회식을 마친 뒤 용산구 한남동 집으로 가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30분 넘게 ‘호출 가능한 택시가 없습니다’라는 안내만 반복될 뿐이었다. 정씨는 “15분 거리 단거리라서 잘 안 잡힌 것 같다”며 “지나가는 택시들은 다 ‘예약’ 불빛이 들어와 있는데 계속 택시가 없다고 뜨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 여파로 심야 시간대 택시 잡기가, 특히 단거리 이동의 경우 앱을 통한 택시 잡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여파로 법인택시 기사가 급감한 데다 소위 ‘지지기’로 불리는 불법 매크로 앱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택시 대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지기는 카카오T 앱에서 원하는 목적지나 특정 거리의 콜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본래 카카오T 앱은 근처 기사에게 콜이 동시에 뜨기 때문에 선착순으로 배정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지기 앱은 단거리나 특정 목적지의 콜을 원천 차단해 원하는 콜만 누를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노릇을 한다. 실제 구동 모습을 확인해보니 콜이 들어왔다는 안내음이 나오기도 전에 거부 설정을 해둔 지역의 콜은 자동 삭제됐다.

상대적으로 비싼 지지기 앱을 이용하면 아예 선호 지역을 자동으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 한 지지기 앱은 가입비만 60만원에 콜 골라잡기 방식에 따라 월 이용료 6만~8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그럼에도 택시 기사들이 지지기를 사용하는 건 ‘콜 골라잡기’로 그 이상의 수익을 얻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입비 38만원에 월 5만원짜리 지지기 앱을 파는 A씨는 “앱을 사용하면 일반 기사들과 수입이 월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지지기 앱을 쓰지 않는 기사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카카오T 블루 가맹 택시를 운영하는 노모(42)씨는 “우리가 1시간에 2만원을 벌 때 지지기 앱을 쓰면 5만~6만원을 번다”며 “이 때문에 지지기를 쓸지 고민하는 기사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 이모(53)씨도 “정직하게 일하는 기사들은 바보가 되는 꼴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사가 줄어든 것도 택시 대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 시내 법인택시 기사는 지난달 기준 2만64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1월과 비교해 31.0% 줄었다. 서울시는 반복되는 택시 대란에 지난해 4분기에 이어 또다시 콜 골라잡기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 개인택시 부제를 한시적으로 해제하는 등 7100대를 추가 공급한다는 계획도 이날 발표했다.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불법 앱 사용을 규제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후 규제 방식인 만큼 원천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불법 앱 업자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이라며 “기사들도 사전경고, 배차 제한, 영구 정지 3단계에 걸쳐 제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