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말이죠…” MZ세대에게 역멘토링 받는 부장님들

입력 2022-04-20 04:02

국내 한 대기업 부장급 직원 A씨는 최근 부서의 90년대생 직원들과 ‘점심 미팅’을 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는 서울 강남의 핫플(핫플레이스) 브런치 카페를 장소로 잡고 태블릿PC도 챙겼다. 그는 “MZ세대의 취미생활, 인간관계, SNS 활동 등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회사와 상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배울 수 있어 부서 관리나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MZ 탐구’에 몰입 중이다. 민간기업은 물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공기업까지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기업들이 MZ세대에 몰두하는 건 이들이 각 조직의 주력으로 성장하며 미래 성장엔진으로 자리하고 있어서다. 동시에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MZ세대에 맞추지 못하면 인력이 대거 이탈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위계’ 구조 없애고 소통창구 늘리고

19일 재계에 따르면 SK스퀘어의 자회사 티맵모빌리티는 최근 그룹·실·팀 단위 조직을 모두 없앴다. 티맵모빌리티는 조직 개편 이후 신입 직원부터 대표이사까지 서로를 ‘○○님’으로만 부른다. 주4일 근무제 제안을 수용해 매월 셋째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도 운용한다. 사내 ‘지정석’도 일부 없애고 모바일로 좌석을 예약해 앉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경영진이 MZ세대와 직접 소통하는 창구를 운영 중이다.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2030세대의 생각과 경험을 사업부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MZ 보드’를 만들었다. MZ세대 직원에게 회사 제품과 소비자 트렌드 관련 생각을 듣고 SNS에서의 화제 이슈도 전달받는다. 상사들이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을 공부하는 시간인 셈이다. 디자인경영센터에서는 MZ세대로 구성된 젊은 디자이너들이 ‘크리에이티브 보드’로 디자인, 트렌드, 조직문화 관련 의견을 전달한다.

KT에는 만 39세 미만 직원으로 구성된 ‘블루보드’(청년이사회)가 있다.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 문화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KT 관계자는 “상품·기업 이미지를 MZ세대 특유의 생각·경험에 맞춰 개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력 소비층 잡기’ ‘인력 이탈 막기’

기업들이 MZ세대를 ‘열공’하는 건 ‘지갑을 여는 주요 세대’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해 경제적 소비를 하는 반면 MZ세대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를 중시한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개인적 만족도가 높으면 소비를 선택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980~2000년대 출생자 38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6.6%가 가심비를 가장 중요한 소비 가치관으로 꼽았다. 이어 ‘미닝아웃’(소비를 통한 개인의 신념 표출) 28.7%, ‘돈쭐’(돈으로 혼내주는 구매운동) 10.3%, ‘플렉스’(자랑·과시형 소비) 7.9%, ‘바이콧’(불매운동의 반대인 구매운동) 6.1% 등이었다.

MZ세대 배우기는 기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수직적 조직문화를 고수하는 기업에서는 ‘MZ세대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인재 유출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조직 충성도나 헌신에서 약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수직형 구조의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경직된 문화가 남아 있는 기업일수록 인력 이탈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자구책으로 MZ세대 탐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기업도 다르지 않다. 한국수자원공사는 5년차 이하 젊은 직원이 참여하는 내부 이사회를 운영해 업무수행 방식, 주요 사업에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도 올해 대리급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KEA 브릿지’를 만들어 경영진에 MZ세대 의견을 직접 전달하는 창구를 운영할 계획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