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때는 옳고 지금은 그르다

입력 2022-04-20 04:02

세상 변화가 너무나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달라지는 느낌이다. 오늘날 기술의 변화 속도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추월했다. 아무리 애써도 세상의 변화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부터 갖춰야 한다. 세상이 변해도 우리 삶에서 우정과 사랑만큼 행복을 좌우하는 건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선 변화의 흐름에 부지런히 올라타지 않으면 나중엔 아예 쫓아갈 수도 없게 된다. 부지런히 적응하지 않으면 음식 주문조차 하기 힘들지 모른다. 많은 학자가 이 시대엔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잘 배우느냐가 중요하고, 낡은 사고를 고집하기보다 현실 변화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다시 생각하기’에서 애덤 그랜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는 말했다. “다시 생각하기는 주변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적게 하는 지름길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고 도구 가운데 어떤 것,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을 아는 것, 이것이 지혜이다.”

문제는 변화한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래 ‘그때는 옳고 지금은 그르다’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현실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하고, 현실을 다시 생각하는 힘을 갖추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생각의 배선을 바꾸려 할 때 우리 마음속엔 전도사, 검사, 정치인이 먼저 날뛰기 때문이다.

전도사는 자신이 성스럽게 여기는 믿음이 위험해질 때 자기 이상을 보호하고 드높이려고 우선 설교부터 퍼붓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반대하는 사람의 논리나 변화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지점을 발견하면 순식간에 검사로 돌변한다. 남의 말을 듣거나 변화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상대방이 틀렸고 자기가 옳음을 입증하는 논거를 한없이 줄줄이 늘어놓는다. 검사랑은 본래 대화가 어려운 법이다.

설교도 논박도 통하지 않으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자기 생각에 관한 동의를 얻으려고 여론몰이를 시도하거나 로비를 벌이는 등 각종 공작을 수행한다. 사내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내면의 이데올로그와 어용 지식인과 정치가 힘을 합쳐 변화에 저항하면 잘 나가던 일도 갑자기 안 풀린다. 현실에 맞춰서 뜻을 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실패의 쓰디쓴 즙을 핥게 된다. 열변을 통하고 변명거리를 찾고 여론을 모으는 사이에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기 때문이다. 과거에 옳다고 믿었던 그 생각은 과연 지금도 옳은가. 그때는 옳고 지금은 그르지 않은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고쳐먹는 정신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내면의 전도사, 검사, 정치인을 물리치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그랜트는 말한다. “다시 생각하기는 과학자의 필수 요소다. 과학자라면 자기가 아는 것을 당연히 의심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호기심을 품으며, 새로운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견해를 계속 수정 보완한다.” 이런 태도로 변화를 대할 때만 우리는 현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리더는 능숙한 과학자처럼 행동한다. 미국 대통령의 성과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위대한 대통령을 구별하는 요소는 지적 호기심과 개방성이었다. 훌륭한 대통령은 독서 폭이 넓고 학습 욕구가 높았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정책도 실험처럼 진행하다 결과가 나쁘면 즉시 폐기했다. 그들은 자기가 옳은 이유를 늘어놓기보다 틀렸을 만한 이유를 찾아 나섰고, 새로 학습한 것을 바탕 삼아 낡은 생각을 고치는 용기를 품었다. 정신적 유연성은 성공의 비결이다.

한 국가의 리더가 다시 생각할 수 없으면 나라 전체가 현실 감각을 잃고 불행에 빠진다. 새로운 대통령은 부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