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검수완박 논란을 지켜보며

입력 2022-04-19 04:08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이슈가 된 건 벌써 1년도 넘은 일이다. 1년여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국의 검사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도 최근 사직서를 낸 김오수 현 검찰총장의 입장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검찰 수사 기능이 폐지되면 검찰총장직은 의미 없다”고 한 김 총장과 마찬가지로 윤 전 총장도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했었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3월 2일자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대해 “거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공소유지 변호사들로 정부법무공단 같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입법이 이뤄지면 치외법권의 영역이 확대되고 보통 시민들은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검수완박 항의를 명분으로 며칠 후 사퇴한 윤 전 총장은 몇 개월 뒤 정치에 뛰어들었고 대통령 당선인이 됐다.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윤 당선인이 정치에 뛰어들게 된 계기로 꼽는 인물과 사건이 여럿 있지만 대통령 당선인이 되게 해준 직접적 계기는 검수완박이었던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 그리고 이를 결사반대한다는 국민의힘 움직임에 진정성이 별로 없다고 보는 편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적 요소만 제외한다면 정치적으로 볼 때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추진할 이유가 없고,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검수완박을 막을 필요가 없다. 검수완박 법안은 권력을 잡은 이에게 가장 유리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정권의 부패나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독립된 검찰의 수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안이다. 입법 사법 행정을 사실상 모두 장악했던 문재인정부 집권 시기에도 검찰은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수사했고 성과도 냈다. 하지만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수사하기 어려워진다. 아니 아예 불가능해진다.

이제 곧 출범할 윤석열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견제하고 혹시 모를 막무가내식 정책 집행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인 검찰의 수사를 막는 법안을 야당이 될 민주당이 추진한다니 아둔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추미애 박범계 법무부 장관 휘하에서 인사권 통제를 받았던 검찰이 문재인 정권을 견제했던 만큼 향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통제할 중대범죄수사청이 새 정권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법안 저지에 적극 나설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말만 내세우다 법안 통과 후 “거대 여당의 폭주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는 식의 성명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임이 눈에 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권 견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법안을 새 정권의 여당이 막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윤 당선인은 다를까. 그가 검찰총장이었을 때야 “직을 걸고 막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럴까. 선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른 법이다. 윤 당선인도 취임 후엔 사사건건 흠집을 잡으려 드는 검찰 후배들보다는 민주적 통제에 익숙한 경찰 조직과 법무부 장관 휘하의 중대범죄수사청 조직만으로도 충분히 거악과 맞설 수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위헌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는 잘못 설계된 제도 때문에 범죄 피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추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아우성도 쏟아지고 있다. 따져봐야 할 게 많은 법안인데 여당이 짜놓은 일정표에는 그런 것들을 따져볼 시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 전후에 이어질 논란과 다툼의 나날이 범죄 피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