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보다 뛴 물가… 소비 위축→기업 고전→임금 제자리 ‘악순환’

입력 2022-04-18 04:02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2.5%로 실질임금 상승률(2.0%)보다 0.5% 포인트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공급이 감소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린 데다 경기가 침체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올해도 지난해처럼 역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2.5%로 2017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실질임금 상승률(2.0%)보다 높았다. 올해도 이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1% 뛰어오르며 4% 고지를 넘어섰다. 연간 최소 3% 이상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외 공신력 있는 기관의 평가에 차이가 없다.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3.1%에 이를 거라는 동일한 전망을 내놨다.

문재인정부 초기만 해도 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더 높았던 것과 대비된다. 2018~2019년의 경우 최저임금 급등 영향으로 실질임금 상승률이 각각 3.7%, 3.5%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물가는 1.5%, 0.4% 오르는 데 그치며 되레 성장을 정체시키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를 불렀었다. 그랬던 상황이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이후 급반전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월급 통장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뛰어오르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상황이 수요 확대가 아닌 공급 측면 영향 때문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기 회복형 인플레이션은 줄었던 수요가 회복하면서 물가를 올리는 형태로 발생한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성이 야기한 현 상황은 회복형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최근 물가 상승은 공급 측면 영향이 크다”고 단언했다. 소비 추이와 상관없이 고물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급 문제가 주도한 인플레이션은 기업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소비가 위축될수록 공급자인 기업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그나마 채산성이라도 있으면 괜찮은데 그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원자재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생산비를 끌어올렸다. 수요가 적으니 가격을 낮춰야 팔릴 텐데 그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기업 수익 증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낙수 효과’가 줄어들 거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소비 위축→기업 수익 악화→임금 인상폭 제한’이라는 부정적인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금리까지 오른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이 미국 금리 인상과 동조할 경우 올해 국내 기준금리가 2.86%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우 가계대출 금리가 1.90% 포인트 상승하면서 연간 가계대출 이자 부담 증가액이 40조3000억원까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금융부채가 있는 가구당 평균 연간 이자 부담이 345만원 더 증가하는 셈이니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조사팀장은 “기준금리가 계속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늘면서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심희정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