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내신 기출문제… 학교선 못 보고 학원에선 보고

입력 2022-04-18 00:03
서울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한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 A군은 지난해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중 담임교사에게 기출문제 열람을 요청했다. 담임교사는 “각 과목 교사와 교무부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도장을 받아 오라”고 A군에게 지시했다.

도장을 모두 받은 A군은 점심시간 학교 교무부장 교사와 함께 도서관으로 가 총 5과목 기출문제를 10분여간 열람했다. 교무부장은 A군에게 “시험지 촬영이나 복사는 안 되니 눈으로만 보라”고 일렀다고 한다. 간단한 메모도 할 수 없어 눈으로만 기출문제를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17일 “옆에서 눈치를 주고 재촉하니 아이도 문제를 제대로 못 봐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전국 중·고교 중간고사철을 맞아 학교마다 제각각인 내신 기출문제 공개 기준을 두고 학생과 학부모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학교별로 공개 방식이 제각각이라 기출 문제를 통한 시험 준비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교육 경쟁력 향상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에서 각급 학교에 내신 시험 기출문제를 공개토록 한 이후 학생·학부모는 기출문제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공개 방식과 기간 등은 학교 상황에 맞춰 정하도록 했다. 홈페이지에 기출문제를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도록 하는 학교도 있지만, 도서관에 비치하거나 교과 교사에게 요청해야만 보여주는 학교도 많다.

반면 사설 학원에선 비교적 쉽게 기출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많은 학원들이 소속 원생 등이 가져온 내신 시험지를 일종의 ‘족보’처럼 관리하며 수강생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한 학부모는 “학원에서 안정적으로 기출문제를 보는 학생과 도서관에서만 보고 집에서 복기해야 하는 학생 사이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출문제 공개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학교 교사들이 출제 오류 가능성을 우려해 시험지 공개를 주저하는 것과 저작권 문제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수도권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교사들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객관적으로 검토되는 게 부담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교사들이 창의적으로 만든 문제인데 학교가 나서서 홈페이지에 공개를 했다가 유료로 판매가 되면 책임 소재가 애매해진다”고 설명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시험 대비를 위해서는 학교에서 학생에게 기출문제를 적극 공개하는 게 맞다”며 “다만 사교육 기관 등에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