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검수완박과 용산 이전·한동훈

입력 2022-04-18 04:03

지난달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당선인의 일성은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집무실 이전’이 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용산이라는 지역은 대선이 끝난 뒤에야 등장한 선택지였다. 윤 당선인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갑작스러운 전개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공약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게 갑작스러움을 설명하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국민의 삶에 어떤 시급성이 있는지도 설득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행보에 대한 비판은 컸다. 인수위원회와 국민의힘 일각에서조차 차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해하기 힘든 고집스러운 밀어붙이기가 계속되면서 윤 당선인의 무속 논란과 연결짓는 설명들이 세간에선 힘을 받았다. 밀어붙이기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청와대는 결코 들어가지 않겠다’며 벼랑 끝 대치를 선택했고,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협조를 약속하며 일단 대치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용산 이전 문제가 끝나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쟁이 시작됐다. 이번엔 대선에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민주당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검찰 개혁 목소리가 머리를 들 때만 해도, 패인을 찾는 과정에서 ‘미완의 개혁’을 아쉬워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삽시간에 그 목소리가 퍼지더니 당내 비판론을 소멸시키고 당론이 됐다. .

민주당 역시 이 갑작스러운 전개에 검찰 개혁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며 ‘지금이 아니면 마무리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검찰 수사권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진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난 집권 5년간 논의에서 남겨뒀던 부분을 무조건 지금 마무리하겠다는 식의 입법을 이해하긴 어렵다. 민주당이 자신들을 향한 검찰 수사의 칼날을 막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 당선인의 용산 이전을 무속 논란으로 이해했듯, 민주당의 무리수도 그런 배경 외엔 설명이 어렵다는 얘기다.

윤 당선인의 ‘5월 10일 집무실 이전’이 새 권력의 힘으로 관철한 것이라면,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은 다수당 권력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양쪽의 행보는 공수만 바뀌었을 뿐 방식도 해명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이 한창인 가운데 윤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 역시 그렇다. 윤 당선인에게 한 후보자는 명석하고도,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명분이 있을 테지만 이 역시 충격을 줬다. 지지와 반대를 떠나 무수한 갈등과 다툼을 불러일으켰던 형사 사건에서 최종 무혐의 판단을 받고 피의자 신분을 벗은 지 1주일 된 인물을 지명한 것부터가 ‘정면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명분이 옳다’는 확신은 정당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숙의 과정 없는 명분 대결은 정치라는 말로 포장한 ‘힘 싸움’일 뿐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의 용산 이전과 한동훈 지명을 보면서, 윤 당선인 측은 민주당의 검수완박을 보면서 ‘거봐라 우리가 옳다’라는 확신을 더 얻고 있는가. ‘아차, 우리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안타깝지만 국민도 지금 정치에 희망을 걸지 못할 것이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