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시험 관리 부실이 적발돼 기관경고를 받은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이 이번엔 소방기술사 시험에서 문제지를 미리 노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일부 수험생만 미리 문제지를 확인한 상황에서 시험이 치러져 형평성이 무너졌다는 비판이다. 피해 수험생들은 “수년을 준비했는데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7일 소방기술사 수험생 등에 따르면 산인공이 전날 실시한 제127회 소방기술사 시험에서 일부 시험장 감독관들이 1교시에 해당 교시 시험지가 아닌 2교시 시험지를 나눠주는 일이 발생했다. 산인공 측은 급히 시험지를 회수했으나 일부 수험생은 다음 교시 시험 문제를 미리 볼 수 있었다. 이 수험생들은 1교시 뒤 쉬는 시간을 틈타 2교시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험장에서는 시험지 회수·교체로 시간이 지체되며 정해진 시각보다 늦게 시험이 시작됐다.
소방기술사 시험은 관련 업계 종사자가 취득할 수 있는 소방안전관리 자격증 중 최고 난도를 자랑한다. 응시자격부터 관련 업계 9년 이상 경력자 혹은 4년제 대학교 관련 학과 졸업 후 6년 이상 경과자로 한정되는 등 응시자 수준이 상당히 높다. 지난 5년간 최종합격률은 2.49%에 불과하다.
이번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 A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소방기술사는 수험생 수준이 모두 최소 준전문가급이기에 사소한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시험”이라며 “구체적인 문제가 아닌 문제 제목만 잠깐 노출돼도 큰일인데 시험지 자체를 줘버렸으니 형평성에 매우 어긋난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소방기술사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 이렇게 불공정한 일을 겪어도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평균 준비 기간만 3년에 달하는 시험에서 억울하게 당락이 갈린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산인공의 이 같은 사고는 지난 4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세무사시험에서 ‘총체적인 부실’이 있었다는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한 지 2주 만에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산인공이 국가기술자격시험 독점 체제에 안주한 탓에 외부 지적에도 해이한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산인공이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시험만 496종에 달한다.
산인공이 전문자격시험에서 시험지 배부 관련 실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에는 토목시공기술사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에게 토질및기초기술사 시험지를 배부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산인공은 수험생 항의에 “본인이 시험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산인공은 이번 사태에는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