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부동산 정책 실패한 진짜 이유

입력 2022-04-18 04:05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마지막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도 결과적으로 부동산시장 안정을 이뤄내지 못한 점에 송구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부동산 반성문’이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은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전국 아파트 가격이 37.7%(KB국민은행 기준) 뛴 가격지표만 봐도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홍 부총리는 “서민·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지원과 주거 안정성 강화 등을 위해 정부도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지원해 왔다”고 주장했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는 취지다.

역설적으로 홍 부총리 발언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부동산 문제를 보는 인식이 수요자 시각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생애최초주택 구매자에 대한 취득세 감면과 연 소득 8000만원 이하 무주택자에 대한 LTV(주택담보인정비율) 10% 포인트 우대 등을 내 집 마련 지원정책 사례로 소개했다.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정책이다.

하지만 수요자에게 이런 정책들은 별 도움이 안 됐다. 집값부터 억 단위로 오른 마당에 고작 취득세 수백만원 중 일부를 깎아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LTV 우대는 시가 6억원(조정대상지역은 5억원) 이하 주택에만 적용되는데 당시 이미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9억5000만원이었다. 고작 이런 정책들 갖고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운운하는 건 대국민 배임에 가깝다.

부동산 정책은 각자 처지에 따라 정책 수요자의 입장이 다르다. 때문에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책 당국자가 각 수요자가 어떤 정책을 필요로 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런 과정 없이 5년 내내 수요자를 옥죄기만 했다.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내 집 마련이 필요한 무주택자에게까지 예외 없이 대출 규제를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집값이 갈수록 오르는 걸 본 실수요자들은 정부를 믿고 기다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살지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집값은 안 잡혔고 정부는 규제 고삐를 죄기만 했다. 정부를 믿고 기다린 실수요자가 혜택 본 게 하나도 없다는 경험칙이 쌓이면서 시장에서는 규제가 더 강화되기 전 빨리 집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퍼졌다. 2030세대의 ‘영끌’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이유다.

흔히 공급 부족을 지적하지만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주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니다. 홍 부총리 스스로도 “(현 정부) 5년간 주택 공급은 입주 물량과 공공택지 지정 실적 모두 과거 대비 많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공급 부족 논란이 제기됐던 건 정부가 정책 수요자 심리를 이해하지 않고 그저 억누르다 보니 당장 급하지 않은 가수요까지 부채질한 측면이 크다.

주택 보유자도 부동산 정책의 수요자란 사실을 간과한 점 역시 패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보유세·거래세를 모두 높였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두 차례 높였고,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감면 규정에도 실거주 의무를 추가했다. 그러더니 주택 보유자들의 세금 불만이 극심해지자 뒤늦게 1가구 1주택자 일부만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땜질 처방’을 내놨다. 집값도 세금도 다 올려놓고 뒤늦게 세금 조금 깎아주겠다고 생색이라니,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현 정부의 실패는 실생활에 밀접한 부동산 정책을 불로소득 환수, 시장 안정 등 다분히 이념적이거나 ‘관리자 마인드’로만 접근한 결과다.

새 정부는 문재인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새 정부는 이미 잔뜩 오른 집값과 가계부채 등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요자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