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대나무 숲을 찾아서

입력 2022-04-18 04:07

임금의 모자 속에 숨겨진 귀가 실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떠벌리지 못한 이발사는 속이 끓어 자주 배탈이 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대나무 숲을 찾아가 구덩이를 파고 임금의 비밀을 외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는 이발사가 배탈이 난다는 점에서 현실 고증이 매우 잘된 이야기라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 준법정신이 투철한, 심히 도덕적인 어린이였다. 모두들 한 번쯤 도둑질을 해볼 때 나는 병원에 놓인 과일 사탕 한 개 집어 오지 못했다. 내가 하는 거짓말은 금세 들통이 났고 무엇보다 남에게 들은 비밀을 말하지 못해 자주 배가 아팠다. 그렇다, 배가 아팠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너도나도 내게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두 ‘네게만 말하는 비밀’이라고 했다. 어느새 내가 인기 있는 대나무 숲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저 추임새였을 수 있다. 나만 아는 줄로 알았던 누군가의 비밀이 실은 공공연했던 적도 있다. 과자 부스러기를 조용히 짊어지는 개미처럼 나는 조금씩 비밀과 소문을 주워 모았고 그것이 모이면 하나의 그럴싸한 그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방음이 매우 잘되는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곳은 대나무 숲이며 아침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 같은 공간이다. 그 안에서는 그간 들었던 모든 비밀과 자신의 비밀을 발설할 수 있고 고함과 욕설을 내뱉을 수 있다.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극적인 손짓과 몸짓을 한다. 주워 모은 소문의 부스러기를 모아 막장의 이야기를 중계한다. 아무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들을 수 없다.

대나무 숲은 어디에 있나? 길가에는 눈과 귀 그리고 CCTV가 너무 많다. 다세대 주택 및 아파트에선 이웃 간 매너를 위해 층간 소음에 주의해야 한다. 산에서 고함을 질렀다간 토끼들이 놀라 도망갈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나의 모국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여행지가 잠시 편한 이유다.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