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한 손봉호(84) 서울대 명예교수는 13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드러내는 걸 겸연쩍어하는 뉘앙스가 곳곳에 묻어났다. 손 교수는 “아내는 국민일보와 재산 기부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기사가 나가면 왜 세상에 이 일을 알리느냐고 야단맞을 수도 있다”며 미소지었다. 다음은 손 교수와의 일문일답.
-재산 기부를 결정한 이유부터 듣고 싶다.
“밀알복지재단에서 과거 장애인 관련 일을 하면서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고통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 외에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많은데.
“1970년대 유학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막 일하기 시작했을 때 지식인 대다수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을 주목했다. 하지만 나는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굉장히 검소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70년대부터 꾸준히 환경운동에 가담했다. 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원을 아끼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그걸 내 삶에서 실천해 왔다. 세수한 물은 변기에 넣어서 재활용하고 설거지한 물은 텃밭에 뿌린다. 머리도 50년 넘게 아내가 깎아줬다. ‘여행을 위한 여행’ ‘휴가를 위한 휴가’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껴서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게 아깝지는 않나.
“돈을 모으기 위해 아낀 게 아니다.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그걸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데 쓰는 것, 그게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다.”
-기부를 결심한 뒤 자녀들 반응은 어땠나.
“우선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신세는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였다. 아들이 서울대에 다녔는데 (내가 서울대 교수임에도) 내 차로 같이 학교에 간 적이 없다. 아들은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벨기에 유학 중이었는데 훗날 들으니 생활고가 심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도와 달라는 편지 한 통 쓴 적이 없다. 지독하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다. 딸과 아내도 내 의견에 기꺼이 동의했다.”
-기부에 담긴 성경적 가치가 있다면 뭘까.
“성경은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는다. 약한 사람에게만 주목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축복인가. 진짜 축복은 돈을 올바로 쓸 때 생기는 거다. 자식한테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게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인가. 자녀를 존중한다면 자녀가 또래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자신의 노력으로 나아가게 해줘야 한다. 칼뱅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자로 만든 건 그를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루터는 ‘크리스천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돈을 올바로 쓰자는 게 종교개혁 정신이다. 돈을 많이 지닌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부를 쌓아 놓고 검소하게 사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