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손봉호 교수 “장애인 고통 줄이는 게 돈 가치 있게 쓰는 법”

입력 2022-04-15 04:00
손봉호(왼쪽)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3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빈민촌을 방문해 선천성 사지 무형성 장애가 있는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밀알복지재단 제공

13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한 손봉호(84) 서울대 명예교수는 13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드러내는 걸 겸연쩍어하는 뉘앙스가 곳곳에 묻어났다. 손 교수는 “아내는 국민일보와 재산 기부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기사가 나가면 왜 세상에 이 일을 알리느냐고 야단맞을 수도 있다”며 미소지었다. 다음은 손 교수와의 일문일답.

-재산 기부를 결정한 이유부터 듣고 싶다.

“밀알복지재단에서 과거 장애인 관련 일을 하면서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고통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 외에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많은데.

“1970년대 유학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막 일하기 시작했을 때 지식인 대다수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을 주목했다. 하지만 나는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굉장히 검소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70년대부터 꾸준히 환경운동에 가담했다. 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원을 아끼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그걸 내 삶에서 실천해 왔다. 세수한 물은 변기에 넣어서 재활용하고 설거지한 물은 텃밭에 뿌린다. 머리도 50년 넘게 아내가 깎아줬다. ‘여행을 위한 여행’ ‘휴가를 위한 휴가’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껴서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게 아깝지는 않나.

“돈을 모으기 위해 아낀 게 아니다.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그걸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데 쓰는 것, 그게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다.”

-기부를 결심한 뒤 자녀들 반응은 어땠나.

“우선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신세는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였다. 아들이 서울대에 다녔는데 (내가 서울대 교수임에도) 내 차로 같이 학교에 간 적이 없다. 아들은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벨기에 유학 중이었는데 훗날 들으니 생활고가 심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도와 달라는 편지 한 통 쓴 적이 없다. 지독하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다. 딸과 아내도 내 의견에 기꺼이 동의했다.”

-기부에 담긴 성경적 가치가 있다면 뭘까.

“성경은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는다. 약한 사람에게만 주목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축복인가. 진짜 축복은 돈을 올바로 쓸 때 생기는 거다. 자식한테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게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인가. 자녀를 존중한다면 자녀가 또래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자신의 노력으로 나아가게 해줘야 한다. 칼뱅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자로 만든 건 그를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루터는 ‘크리스천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돈을 올바로 쓰자는 게 종교개혁 정신이다. 돈을 많이 지닌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부를 쌓아 놓고 검소하게 사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