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라미레스는 1984~8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1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나이트 스토커’로 불렸다. 살해 방법도 성폭행 후 난자, 총살 등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라미레스가 체포돼 모습을 드러내자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큰 키에 늘씬한 체격, 강인한 인상에 반한 젊은 여성들이 구치소에 있는 라미레스에게 자신의 사진(누드사진 포함)을 보냈고 재판정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많은 미국인들은 팬클럽처럼 열광하는 일부 반응에 ‘나쁜 남자 신드롬’이 극단으로 치달았다며 혀를 찼다.
유명세를 얻은 범죄인에 일부 대중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나라별로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신창원은 1990년대 후반 탈옥 후 2년6개월간 경찰 감시망을 뚫고 도주하며 강도 행각을 벌였다. 신출귀몰함과 부잣집을 주로 터는 행위에 의적 소리를 들었고 여성들 10여명이 그의 은신을 도왔다. 검거된 뒤 화면에 비친 그의 무지개 패턴 윗옷은 완판됐다. PC통신에서 범죄자 첫 팬카페가 개설됐다. 20대 여성 이모씨는 2004년 남자친구와 함께 여성들을 납치하고 돈을 빼앗았다. 공개수배가 된 특수강도범 이씨의 미모에 네티즌들은 ‘강도 얼짱’이라며 열광했고 팬카페 회원이 6만명에 달했다.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 실질 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아들 대균씨의 도피를 돕던 경호원 박모씨에겐 ‘미녀쌈장’이란 이름의 팬클럽이 생겨났다.
설마하던 일이 또 벌어졌다. 2019년 가평 계곡에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공분을 자아낸 공개수배범 이은해에게도 팬톡방이 결성됐다. “이쁘면 다 용서된다” “은해 공주” 등의 대화가 가득하다. 남편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어떤 감정도 없이 죽게 만든 사이코패스조차 외모지상주의의 수혜를 입고 있다. 감정을 피해자 아닌 가해자에 이입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검경의 추적에도 연기처럼 사라진 모습이 괜한 호기심을 자아낸다고 한다. 초기 수사를 잘못해 도주 빌미를 제공한 경찰이 속히 그를 체포해야 비정상적 관심이 사라질 터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