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저 삼재인가 봐요. 왜 이렇게 나쁜 일들이 계속 있죠?” 삼재란 말 그대로 세 가지 재난이다. 정신과 환자들이 정말 재수가 없는 해라는 의미로 많이 쓴다. 정신의학적으론 삶의 여러 가지 실패들을 적응해 나가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적응장애’라는 진단명을 내리기도 한다. 이혼이나 실직 그리고 인생의 커다란 변화 앞에서 우리들은 모두 연약한 존재로 다같이 평등해진다.
하지만 이런 ‘고립’이라는 시기엔 정신건강의학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 기존에 가라앉아 있었던 불안의 잔재물들이 위기 상황에서는 수면 위로 떠올라 각종 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호흡 곤란,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 알 수 없는 통증 등으로 인해 각종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하느라 수백만원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건강염려증으로 이어지고, 신체 감각에 대한 예민함이 작동하면서 증상에 집착하게 돼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백신을 맞고 나서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 순간 뇌에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면서 신경전달물질의 혼란이 찾아오고, 몸에서는 면역 기능이 떨어지며,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찾아온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미결정 상태일 때 공포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그렇다면 먼저 코로나 이전으로 왜 꼭 돌아가야만 하는 것일지 생각해 보라.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놓기 싫거나 유지하고 싶어서 익숙한 걸 원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기존 것들이 다 흔들린다.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위기 상황을 새로운 가치 체계를 형성할 좋은 계기이자 기회로 본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닥까지 떨어져 봐야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고, 몸을 혹사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 가정을 돌보지 않던 사람은 배우자가 떠나고 자녀가 엇나가야 정신을 차린다. 자녀 성적에 집착하는 부모는 아이가 육체적·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그때에야 “건강만 해다오” 하며 자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또한 우리 모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 기회가 될 수 있다.
똑같이 코로나 시대를 살지만 마음가짐은 다 다르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신건강과 행복지수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 막연히 팬데믹 종식만을 기다린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의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며 최악의 경우만 생각한다.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관련 뉴스 기사를 매일 들여다보면서 끝없이 치솟는 확진자 수에 심장 박동 수도 치솟을 것이다. 내 모든 안위와 행복이 마치 코로나 때문에 사라진 것처럼 여긴다. 팬데믹으로 가정, 일터, 교회에서 우리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가족과 다툼이 잦아졌고,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를 통해 출근하지 않고도 업무가 가능함을 알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점점 흐트러지는 모습에 내 신앙의 현주소와 맞닥뜨렸다.
인류 역사에서 고립의 시기는 항상 있어 왔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하는지, 그리고 내 가치 체계에서 무엇이 깨어져야 할지 살펴보는 기회로 만들자. 강제적으로 고립의 시간이 주어지면서 바쁘게 지냈던 일상 속에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간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