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죽고 난 후에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그의 태어난 날을 기념해주는 사람, 예술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들이 계속 선보여지고 이야기되는 것만한 영예가 있을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거장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불과 몇십년을 살지만 거장의 작품은 수백년을 살아간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볼 때 나는 종종 내 주변의 예술가들을 떠올린다. 어디서든 좋은 작품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심이 일어 당장 본인의 작업실로 달려가고 싶다는 젊은 예술가들, 그중 누가 거장이 될까.
권진규는 생전에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에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불린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노실의 천사’다. 유족들이 최근 기증한 141점을 비롯해 여러 미술관과 개인들의 소장품까지 모아 놓은 의미 있는 전시다. 전시 오프닝에 참석해 유족들의 인사말과 작품을 잃을 뻔했던 소송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작품들을 되찾았고, 이제 서울시립미술관을 통해 그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가 활기를 띨 것이었다.
거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은 ‘천재’ ‘천사’라 불리는 권진규의 비운의 시절이 궁금해 미술관 서점에서 평전을 구입했다. 생전에 함께 살았던 조카가 쓴 책이라서 구체적 자료와 에피소드가 풍부했다. 유튜브 검색을 했더니 또 다른 조카가 삼촌 권진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도 있었다. 같은 집에서 일상생활을 함께한 조카들의 책과 이야기는 작품만이 아니라 권진규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삼촌은 따뜻한 성격의 사람은 아니셨어요. 냉랭하신 분이셨죠.” 영상을 틀어놓고 한눈을 팔아가며 무심히 듣다가 이 대목에서 귀가 쫑긋 세워졌다. 거장이라면 업적 이외의 것들까지 미화되곤 하지만 평온하고 상냥한 얼굴로 담담하고 솔직한 회고를 풀어가는 화자의 모습이 신뢰가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 그렇게 말해주니 실망보다는 묘한 통쾌감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래, 작품이 좋다고 인격까지 완벽할 순 없지. 거장이 되는데 꼭 다정함이 필요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작업시간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분이셨어요. 예술가라기보다는 장인과 같이, 직업인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지 않았나 싶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 5시 정도 되면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미술 관련 일은 하지 않으셨어요.”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권진규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식사시간을 빼고는 아틀리에에서 온종일 작업했습니다. 새벽과 밤에는 주로 구상과 드로잉을 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하마터면 내 주변의 작가들은 거장 되기는 어렵겠구나 체념할 뻔했다.
쉬지도 않고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업에 대한 깨어 있는 의식과 매일의 성실함이고, 권진규의 훌륭함은 거기에 있었다. 권진규도 저녁에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다음 날 계획도 세우고, 일기도 쓰고, 친구와 전화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거장이라는 타이틀은 타인에 의한 것이고 후대에 의한 것이었다. 영상 말미에서 화자는 “그 당시 여건에서 거기까지 간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위인과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가까이 지내보면 충분히 견줄 수 있는 대상이고, 젊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넘어서야죠”라고 말해준다.
이쯤에서 권진규보다 유족들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권진규는 성실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였고, 그를 지켜본 유족들은 그의 작품과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미술관에 기증하고, 객관적으로 증언함으로써 그가 거장으로 평가받도록 도우면서도 후대의 예술가들을 기죽이지 않고 동기부여 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각가 권진규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고 가깝게 느껴졌다. 전시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검색해 보니 나이가 지긋한 조카분들이 도슨트로 나선다는 소식. 봄날의 정동길을 걸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보길 권한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