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과 광주시민들이 끝까지 응원하고 지켜주셔서 ‘행복 배구’를 했어요.”
12일 경기도 수원 자택 인근에서 만난 김형실(사진) 페퍼저축은행 감독은 “언제 시간이 1년 지났는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4월 열린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통해 여자부 7번째 팀으로 9월 연고지 광주에서 공식 창단했다. ‘V리그 원년 우승 및 2012 런던 4강 신화’ 등 수십 년간 여자배구에 몸담아온 백전노장 김형실(70) 감독이 10년 만에 나온 신생팀의 초대 사령탑을 맡았다.
김 감독의 페퍼저축은행은 첫 시즌을 3승 28패 7위로 마쳤다. 5개월 만에 급히 팀을 꾸리느라 연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기존 6팀의 보호선수 9명을 제외하고 남은 선수 중에서 팀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전력도 약했다.
하지만 창단 첫 경기에서 KGC인삼공사에 첫 세트를 따내 파란을 일으켰고 최강 현대건설을 상대로 리그에서 처음 승점(1점)을 뺏는 등 시즌 내내 주목받았다. 팬들도 ‘막내 팀’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팬들이 신생팀을 관대하게 기다려줬고 그 덕에 팀 전력과 분위기도 안정됐어요. 슈꼰(슈퍼 꼰대) 잔소리 없이도 체계가 잡혔어요.”
김 감독은 1년간 신생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다. 소속 선수 중 이전 팀에서 주전으로 한 시즌을 완전히 소화한 선수가 1명도 없었기 때문에 체력이나 수비 훈련 등 기초를 중시했다. 선수들이 프로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구단에 요청해 선수 복지에도 힘썼다. “저는 완전 페퍼맨이 됐고 팀은 페퍼 패밀리가 됐어요. 장매튜 구단주도 배구에 정말 진심인 사람이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니 고맙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4라운드 기업은행전이다.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첫 홈 승리다. “(수훈선수 인터뷰 후에) 박경현한테 물 뿌리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물이 쏟아졌어(웃음). 그날 선수들한테 기념으로 쓰리박(외박 3일) 준 게 가장 기억나요. 아름다운 순간이었죠.”
부상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안 아프고 다들 제 기량을 발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죠.”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세터 박사랑과 신인왕 출신 지민경은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시즌 초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됐던 박은서도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졌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리그가 종료된 것도 유감스럽죠. 배구인으로서 아쉽기도 하고 팬들에게 죄송하기도 해요.”
페퍼저축은행은 FA(자유계약선수)로 한국도로공사에서 베테랑 세터 이고은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오는 5월 5일부터는 새 시즌을 위한 훈련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일본 터키 등 해외 전지훈련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 1~2월 5라운드쯤 일찌감치 부상 선수들의 수술과 재활을 시작했다. “5월 훈련에 복귀할 수 있도록 다음 시즌 대비 리모델링을 미리 시작했어요.”
두 번째 시즌에선 ‘창단 프리미엄’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김 감독도 알고 있다. 목표는 10승이다. “용병, 드래프트, 트레이드 모든 걸 동원해 보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보컵과 다음 시즌에는 신생팀 이미지를 탈피하고 명실상부 프로팀으로서 면모를 갖춰 기다려준 팬들께 보답하겠습니다.”
수원=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