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권력 편향적 공무원들

입력 2022-04-14 04:08 수정 2024-02-15 16:29

경제 부처 고위 공무원 A씨는 문재인정부에서 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현 정부 임기 중 소상공인 보호 취지의 법안을 만들고, 국회 통과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주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180도 입장을 바꿨다. 간담회에 참석한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A씨가 이 법안이 편향성이 있다며 대기업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A씨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국회에서 자율 규제로는 소상공인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현 정부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안면몰수하고 정권 성격에 맞춰 말 바꾸기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잘나갔던’ 고위 공무원 B씨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승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재계 등에서 이른바 한가락 한다는 인사 중 B씨의 전화를 못 받았으면 사회 지도층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2~3년 전 인공지능(AI)의 편향성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을 못하는 AI의 특성상 AI 개발자 무의식에 잠재된 성이나 인종차별적 인식이 AI에 그대로 반영되는 현상이다. 흑인을 고릴라로 분류한 구글 포토 사태가 대표적이다. 정권 말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뛰고 있는 공무원들을 보고 있자니 편향적 AI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공복(公僕)의 의무를 망각한 채 그들 머릿속에는 이번에도 승진해 요직에 앉아야겠다는 편향적 자의식만이 가득 찬 듯싶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무원들은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면 국정 기조에 맞춰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제 조건에는 ‘국민을 위해서’라는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 기조가 달라져도 국민에게 이득이 된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해도 된다. 하지만 A씨나 B씨 같은 공무원들은 국민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영혼을 판다.

그렇다고 모든 공무원이 A씨나 B씨 같진 않다. 10년 넘게 공직사회를 취재하면서 국민을 위해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공무원들을 많이 봐왔다. 국장급 공무원 C씨는 현 정부에서 불합리한 부동산 세제 개편을 할 때마다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가 한직으로 쫓겨났다. 문재인정부 초에 권력 실세에게 너무 급작스럽게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본다고 조언했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옷을 벗은 공무원 D씨도 목격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공직사회는 뒤숭숭하다. 누구는 중용되고, 반대급부로 누구는 물을 먹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C씨와 D씨 같은 공무원은 인사상 혜택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공무원들은 그래도 정년보장이라는 특권이 있으니 정권이나 상급자 취향에 상관없이 소신 있게 일해도 잘릴 일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새 정부가 이번에는 권력 편향적 공무원이 아니라 국민 편향적 생각을 가진 이들을 중용했으면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새 술을 가장한 썩은 술을 걸러내는 것이 진정한 공직 개혁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해당 부처의 MZ세대 사무관 몇 명만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된다. 그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신만 생각하는 이율배반적 상관을 귀신같이 골라내는 능력이 있다. 새 정부가 이런 상향식 인사 검증을 통해 제대로 된 인사를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을 읽고 가슴이 뜨끔한 공무원이 있다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영혼을 팔아먹은 게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2022년 4월 14일 [데스크시각] “권력 편향적 공무원들” 관련 반론보도

위 칼럼에서 언급된 경제 부처 고위 공무원 A씨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주
최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여, 정부는 현실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기
관이기 때문에 그간 법안을 추진해왔고, 자율규제방식이 새롭게 대두되었지만, 중요
한 것은 현실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의 실효성 문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느냐의 문제이므로 이 두 가지를 면밀하게 살펴서 정책적으로 결정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를 잘 정리해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였을 뿐이다. 법안이 편향
성이 있다거나 대기업 편을 든다거나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반론보도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