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NPB)에 또 하나의 축복이 내렸다. 190㎝, 85㎏의 당당한 신체조건에 최고구속 164㎞ 포심패스트볼과 150㎞에 육박하는 포크볼을 구사하는 투수. 갓 스무 살을 넘긴 지바 롯데 마린스 사사키 로키가 지난 10일 오릭스 버팔로스와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13타자 연속 삼진을 포함해 19탈삼진을 솎아내며 9이닝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공은 단 105개였다. 경기를 지켜본 메이저리그(MLB) 관계자는 미국에 진출한 역대 일본 에이스들을 소환해 사사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찬탄했다.
NPB에서 퍼펙트게임이 나온 건 1994년 마키하라 히로키(요미우리 자이언츠) 이후 28년 만이자 역대 16번째다. 사사키는 20세 5개월 나이로 최연소 퍼펙트게임 투수에 이름을 올렸다. 한 경기 19탈삼진은 일본야구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이다. 1회 2사 후 요시다 마사오부터 5회 2사 후 니시무라 료까지 13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새로운 최고 기록(기존 9연속)도 세웠다.
더 무서운 건 압도적 피칭에도 불구하고 사사키가 아직 완성형 투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이날 사사키는 패스트볼 64개, 포크볼 35개, 슬라이더 3개, 커브 3개를 던졌다. 슬라이더와 커브는 보여주기 용도에 불과했고 사실상 패스트볼과 포크볼 투피치만으로 퍼펙트를 거뒀다. 구위 면에선 이도류로 MLB를 호령하는 오타니 이후, 아니 일본 야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측정된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무려 159.79㎞, 8일 휴스턴전의 오타니(157.39㎞)보다 빠르고 지난해 MLB에서 가장 빨랐던 뉴욕 메츠의 제이크 디그롭(159.8㎞)에 육박했다. 포크볼 평균 구속(146㎞)은 지난 시즌 NPB 패스트볼 평균 구속(145.7㎞)을 상회했다. 미친 구위의 패스트볼에 다른 투수의 패스트볼보다 빠른 고속 포크볼이 결정구로 곁들여지니 상대 타선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지난 시즌 통틀어 삼진아웃이 26번에 불과했던 오릭스 지명타자 요시다 마사타카는 이날 사사키에게 3차례 삼진을 당한 뒤 “완전히 압도당했다.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야구 만화 주인공 같은 활약상만큼이나 아직 약관에 불과한 인생 스토리도 만화 같다. 2001년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사키는 야구를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들이닥친 쓰나미로 집이 유실되고 사사키 형제는 고지대로 몸을 피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와는 재회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쓰나미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10살 나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이자 어떻게 보면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도 어려웠을 비극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말을 아껴왔던 사사키는 프로 입단 후 언론에 “슬픈 일이었고 ‘지금 살아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 ‘지금 있는 것이 언제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했다. “야구를 할 때가 제일 즐거웠다. 열중할 수 있는 시간 덕분에 힘들 때도 노력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형제들을 데리고 인근 오후나토시로 이사했고 사사키는 야구를 계속했다. 2013년 이재민 가설주택에서 TV로 본 재팬시리즈 경기에서 라쿠텐 이글스를 우승으로 이끈 다나카 마사히로(전 뉴욕 양키스)를 우상으로 여기며 “굉장한 용기를 받았고, 감동했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면서 “로키, 굉장해. 장래에 프로선수가 될 수 있어”라는 응원을 받았던 꼬마는 중학교 3학년 때 참가한 지역선발팀에서 토호쿠 대회 준우승을 이끌며 140㎞가 넘는 공을 던지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당연히 명문고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사사키는 “(중학교) 팀 동료들과 우리 지역 학교에서 고시엔에 도전하겠다”며 낭만을 선택했다. 10여명의 친구와 함께 형 유키의 모교 오후나토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데뷔전에서 147㎞를 던졌고 이듬해 봄에는 153㎞, 여름에는 154㎞, 가을에는 157㎞까지 구속을 끌어 올려 2학년 역대 최고구속 타이기록을 세웠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U-18 대표 예비 합숙에 참여해 최고 구속 163㎞로 타자들을 돌려세우며 오타니 쇼헤이의 160㎞를 넘어선 고교야구 최고구속 신기록을 작성했다. ‘레이와(2019년 시작된 일본의 새 연호)의 괴물’ ‘오타니 2세’로 불리며 명실상부 전국구 스타이자 역대급 기대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강호라고 하기 어려운 팀 전력상 사사키는 고교 3년간 고시엔 무대를 밟지 못했다. 기량이 만개한 2019년 졸업 전 고시엔 지역 예선에서 사사키는 4라운드 194구, 4강 130구 완봉승으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결승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9일간 4경기에서 약 430구를 던진 에이스의 미래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코쿠보 요헤이 오후나토고 감독의 결단이었다. 에이스가 빠진 팀은 결승에서 2대 12로 참패, 꿈의 무대인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사사키는 친구들과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일본은 물론 미국 주요 매체에서도 그의 결장에 대한 기사를 쏟아낼 만큼 글로벌 기대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점은 위안으로 남았다.
2020년 NPB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바 롯데에 지명된 사사키는 2군 담금질 끝에 2021년 데뷔 시즌을 가졌다. 11경기 등판해 2점대 방어율로 기대 만큼의 가능성을 보였고 마침내 올 시즌 제대로 사고를 쳤다. 뛰어난 재능과 야구 실력에 더 큰 장래성,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년기 비극적 경험과 일본 최고 인기 스포츠 야구로 슬픔을 딛고 일어난 히스토리까지 일본의 새로운 야구 영웅이 될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체된 가운데 ‘류·양·김(류현진 양현종 김광현)’ 이후 세계 무대에서 통할 다음 세대 에이스를 키워내지 못한 한국 야구계로선 오타니에 이어 또다시 역대급 재능이 만개한 일본 야구를 향한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게 됐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