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대학 캠퍼스는 봄의 완연함으로 가득하다. 교정은 코로나19의 끝자락이란 희망 속에서 만개한 봄꽃과 함께 더없이 화사하다. 무엇보다 2년 만에 교정을 누비는 학생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일상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임을 실감한다. 20대 청춘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기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다 고민해보라고 주문한다. 지난주 한 학생이 이메일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보내왔다. 이대남 이대녀로 통칭하는 젠더 갈등에 대한 불편함과 그 실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이들 마음 한켠에 무언가 불편함이 있음을 직감한다.
한국사회 갈등의 심각성을 유형별로 정리해보면 계층 갈등, 지역 갈등, 노사 갈등,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젠더(남녀) 갈등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런 배열은 특정 사건이나 상황이 전개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한국사회의 갈등 지형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진행된 갈등에 관한 조사연구가 말해준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갈등 총량에 있어 젠더 갈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잠복된 형태로 잠재적 분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의 정치 경험 속에 젠더 갈등은 여타 갈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형이 작년을 거쳐 올해 요동을 쳤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으로 젠더 갈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대가 인식하는 젠더 갈등은 가볍게 간주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형국이다. 최근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20대는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대비 15% 포인트 증가했다. 젠더 갈등의 심각성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로 이어진다.
갈등의 분절 양상은 투표 형태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젠더가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선거로 기록된다. 과거에는 지역, 세대, 이념, 계층을 중심으로 전선이 공고하게 구축됐다. 지역 정치, 세대 정치, 이념 정치가 선거의 판세를 읽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이번 젠더 이슈는 20대 남녀 모두에게 내가 누구인가의 정체성 문제와 어떤 득실이 있는가의 이해관계 문제가 맞물리면서 양분 상황으로 치닫게 했다. 이른바 이대남 이대녀의 프레임이 젠더 갈등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이대남은 보수 진영을 지지하고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성향을 지닌 20대 남성으로, 이대녀는 이와는 정반대 성향의 20대 여성으로 통칭됐다. 불편한 통칭 그 자체가 아무런 여과 없이 거친 선거 과정을 거치며 갈등과 대립 나아가 비타협적 용어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20대다. 정치의 정략적 계산에 따라 갈라치기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본인의 가치나 성향 또는 태도에 상관없이 이대남 이대녀라는 주홍글씨가 덧씌워진 셈이다. 정치권이 만든 기획물이 언론 매체를 타고 마치 확고한 실체가 있는 듯이 빠르게 확대 재생산됐다.
대선 직후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미디어 이슈로 이대남 현상을 직시하고 이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고 우리 사회의 정곡을 찔렀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이대남 용어를 ‘세대 성별 갈라치기’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이 이대남 이대녀와 같은 구분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정치인, 인플루언서를 꼽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이대남 용어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에 85%가 동의했다. 요약하면 이대남 이대녀로 특징되는 젠더 갈등은 정치적 프레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20대의 목소리를 일반화한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상당 부분 수용하기 어려운 일종의 낙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국민통합위원회가 구성됐다. 통합의 로드맵을 만든다고 한다. 로드맵의 핵심은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신으로 젊은 세대가 꿈을 갖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미래와 꿈이 필요한 이들이 아닌가. 이대남 이대녀 현상이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정치적 정략적 갈라치기의 수단으로 동원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국민 대통합을 바란다면 말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