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류세를 법정 최고한도인 유류세 30%까지 내렸지만 기름값은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원유 도입 ‘시차’를 이유로 정유사가 유류세 인하 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게 남은 ‘카드’가 하나 있기는 하다. 이명박정부 당시 시행한 유가환급금 제도다. 하지만 현 재정상황 등을 감안할 때 시행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지금처럼 물가안정을 최우선 민생과제로 잡았던 이명박정부는 임기 첫해인 2008년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의 하나로 유가 환급금 제도를 시행했다.
당시 정부는 2007년 기준 연소득 3600만원 미만 근로자와 종합소득액 2400만원 미만 자영업자에게 유가 환급금을 지급했다. 급여·소득 수준에 따라 최소 6만원에서 최대 24만원이 지급됐다. 근로소득자, 일용근로자, 사업소득자 등 1435만명에게 지급된 총액은 2조6520억원에 달한다. 기름값을 내리는 게 여의치않자 전 국민에게 ‘위로금’을 준 셈이다.
이런 전례가 있지만 정부는 현 시점에서 유가환급금 지급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단 유가 환급금을 지급하려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고 개정 후 시행까지 일정 기간이 걸려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 어렵다. 소득이 있는 이들만 대상으로 삼다 보니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이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2008년과 비교해 심각하게 악화된 재정건전성 때문이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 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할 정도가 나라곳간 상황은 양호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들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연속적인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으로 지난해 말 기준 국가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이 기존 20%에서 30%로 확대되고, 정유사들이 이를 제대로 반영할 경우 현재보다 약 10% 정도 기름값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12일 “현 수준의 국제 유가(배럴당 95달러)와 유류세 인하 등을 고려하면 ℓ당 1800원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 당 1977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물가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고있는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위해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유가환급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유류세 인하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유가 환급금 지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