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흑산도, 육지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다도해 속 보물섬

입력 2022-04-13 21:13
이른 아침 전남 신안군 흑산도 상라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굽어본 모습. 여명에 물든 예리항 일대와 가로등 불빛 받은 열두 굽이 고갯길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 떨어진 흑산면에 속하는 섬이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잎이 두꺼운 아열대성 활엽수가 짙은 숲을 이뤄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검게 보여 이 이름을 얻었다. ‘1004섬’ 신안군에서도 가장 많은 섬이 속한 흑산면은 전통적 관광지로 유명한 홍도를 비롯해 영산도 장도 가거도 등 12개 유인도와 89개 무인도로 흑산군도를 이룬다. 흑산면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와 김훈의 소설 ‘흑산’, 영화 ‘자산어보’의 배경으로 친숙하다.

흑산도에는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일주도로가 개설돼 있어 육로를 통해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일주도로는 1984년 착공해 27년 만인 2010년 완공됐으며 총 길이가 25.4㎞이다. 배가 닿는 예리항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

고래공원 인근에 세워진 흑산도 아가씨 동상.

예리항에선 흑산도등대 인근 흑산도 아가씨 동상, 고래공원(고래마당), 자산문화관, 파시골목, 홍어 모양의 흑산도 표지석, 진리 지석묘군, 진리성당 등이 볼거리다. ‘혼을 부른다’는 초령목군락지와 진리당, 무심사지 석탑을 지나 용트림하듯 구불구불한 열두 굽이 고갯길을 오르면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의 가사를 지닌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 닿는다. 노래비 오른편에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지만 왼쪽으로 10분가량 걸어서 올라가는 상라산 정상(봉화대)의 전망이 훨씬 더 좋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보면 해상왕 장보고가 해상 무역을 왕성하게 벌일 때 전진기지로 삼았다는 반달 모양의 석성 ‘상라산성’(반월성) 너머 감옥으로 사용했던 ‘옥섬’ 등을 품은 진리항 앞바다와 그 오른쪽으로 아늑하게 들어앉은 예리항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 서쪽을 보면 탁 트인 다도해를 배경으로 대장도(大長島)와 소장도(小長島)로 이뤄진 장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 너머로 홍도가 수평선을 따라 길게 누워 있다.

대장도 해발 100~200m에 이르는 분지에 자리한 우리나라 세 번째 람사르 습지인 장도습지가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매, 솔개와 조롱이, 도롱뇽 등 다양한 생물종 서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리마을에 닿으면 해안가에 한반도 모양으로 구멍 뚫린 지도바위가 반긴다. 이어 하늘도로다. 일주도로 구간 중 자연 훼손을 줄이기 위해 교각이 없는 다리 형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는 도로다.

정약전이 유배생활 중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촌서당.

사리마을에 다다르면 짧은 도보여행이 필요하다. 이곳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인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신유박해(1801)당시 15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물고기와 해양생태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1998년 복원된 사촌서당(복성재) 등 그의 삶이 서린 유적지가 있다. 2009년에는 주변이 유배문화공원으로 꾸며졌다. 유배문화체험장(유배인 안치 가옥), 유배인 안내 비문 등이 조성돼 있다. 영화 ‘자산어보’ 세트장은 도초도에 있다.

사리마을 해안가는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적인 어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소렌토’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해변에는 칠형제바위가 있다. 묵령고개로 가는 길목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최익현의 글씨가 새겨진 지장암과 기념비.

천촌마을 입구에는 조선 고종 때 문신이자 항일의병장인 면암 최익현(1833~1906)이 새긴 글씨와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가 남아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된 면암은 조선이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민족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란 글씨를 남기고 바위를 ‘지장암’이라 명했다. 천촌마을을 지나면 해안에 구멍 뚫린 작은 섬이 있다. 거센 파도가 몰려오면 구멍으로 물줄기가 분수처럼 쏟아진다는 구문여다.

거센 파도가 치면 분수처럼 물을 뿜는 구문여.

이어 오른쪽으로 섬 속의 섬 영산도(永山島)가 자리한다.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경관 8곳을 지칭하는 ‘영산팔경’이 전해온다.

여행메모
목포에서 흑산도 2시간·홍도 2시간 반
예리항 홍어 식당… 마른홍어무침 별미

흑산도와 홍도로 가려면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한다. 배편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출항시간이 달라진다. 비금도와 도초도를 경유한다. 쾌속선으로 흑산도 2시간, 홍도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흑산도 하면 홍어부터 떠오른다. 흑산도 사람들은 날 홍어를 즐겨 먹는다. 홍어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말려서 먹기도 한다. 햇볕에 잘 마른 홍어를 쪄서 참기름 고춧가루 간장 등과 버무려 내놓는 마른홍어무침이 별미다. 예리항 일대에 홍어요리와 회 등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흑산도 일주관광은 주로 SUV 택시를 이용한다.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비용은 4명 기준 6만원. 흑산도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유람선 여행도 좋다.

홍도에 도착해도 파고가 높으면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2~3일 추가로 묵을 준비도 해야 한다. 홍도에는 찻길이 없어 차를 갖고 갈 필요가 없다. 홍도 1구에 모텔과 민박집이 밀집해 있다.



흑산도(신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