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공기살인

입력 2022-04-13 04:10

2011년 4월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내 최악의 소비자 참사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환경부에 신고된 피해자가 2020년 7월 17일 기준 6817명이고, 사망자만도 1553명이다. 독성 화학물질이 함유된 살균제가 처음 시판된 1994년부터 수거 명령이 내려진 2011년 11월까지 17년간 1000만병가량 판매됐다고 하니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게다. 특별조사위는 관련 사망자가 1만4000명, 병원 진료경험자가 67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건강에 좋다고 해 사용한 제품이 생명과 건강을 갉아먹고 평생 족쇄가 됐으니 피해자들의 고통, 배신감,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건 발생 10여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제조·유통 기업들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가 책임 회피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유해성 실험을 생략하고, 실험보고서를 조작하고,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고 홍보하고도 기업들은 위법성이 없다며 발뺌해 왔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해도 배상액은 피해 구제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대참사인데도 5년이 지난 2016년에야 본격 수사에 착수했을 정도로 정부의 대처는 굼떠 관련자들 대다수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빌미를 제공했다. 2017년 8월 피해구제 특별법이 시행되고 이듬해 3월 특별조사위가 출범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에 기대가 쏠렸으나 이마저도 좌초될 상황이다. 최근 피해보상 총액이 최소 7795억원, 최대 9240억원인 조정안을 마련했지만 보상액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할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거부했다. 조정안이 무산되면 피해자들은 다시 피 말리는 소송전으로 내몰리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피해자 시선에서 그려낸 영화 ‘공기살인’이 오는 22일 개봉된다. 피해자들을 외면해 온 기업들, 문제 해결에 손을 놓다시피 해 온 정부 관계자들이 꼭 봐야 할 영화인 것 같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