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는 양계장, 그곳이 바로 병리현상 근원”

입력 2022-04-13 00:03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공간을 보면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아 온 교육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간을 분석해 인간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인문 건축가’로 자신을 소개하며 교도소 혹은 양계장 같은 학교 공간을 당장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제공

사도삼촌(四都三村).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 전공 교수가 최근 강연이나 저서에서 밀고 있는 초·중등 교육의 틀이다. 1주일에 나흘은 도시 학교에서, 사흘은 도시를 벗어나 전국을 캠퍼스 삼아 배우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들었다.

“이번 금요일은 엄마 아빠가 온라인으로 재택근무 가능한 날이다. 목~일요일 묵을 수 있는 집을 전북 고창에서 찾아 예약했다. 목요일 저녁 가족은 고창으로 내려갔다. 다음 날 엄마는 숙소에서 일하고, 아이는 아빠와 고창도서관에서 한국사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마침 고창에서 시작된 동학운동을 배웠다. 토요일 고창의 유적지를 보기로 했다. 수업 뒤 미리 예약한 고창고 체육 수업에 참여해 축구를 한 뒤 수업 확인증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 아이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몇몇은 다음 달에 서울에서 같이 수업을 듣기로 했다.”(유 교수의 책 ‘공간의 미래-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중)

유 교수는 지금의 학교를 양계장에 비유한다. 좁은 공간에서 주인이 던져주는 모이를 쪼아 먹느라 고개를 숙인 닭의 모습과 교실에 앉아 어른들이 쥐어준 책을 고개 숙여 보는 학생들이 겹친다는 것이다. 닭의 대척점에 하늘을 누비며 먹고 싶은 걸 사냥하는 독수리를 놓는다. 사도삼촌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독수리에 좀 더 가깝게 길러내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초·중·고 12년을 양계장에서 보낸 사람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세상을 좀 누벼봐”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는 얘기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갈등 같은 우리 사회의 여러 병리현상도 ‘양계장 교실’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공간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인문 건축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 교수에게 학교 공간의 지향점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그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했다.

-사도삼촌에 대해 교육 분야 사람들의 반응은.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할 것이다(웃음). 재택근무가 가능한 좋은 직장을 가진 부모만 가능한 시스템이란 한계점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을 좀 다양하게 키워보자는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인재란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큰 아이들이 (사회·국가에) 훨씬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교육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건축 설계를 가르치는 것뿐이고, 전반적인 학교 교육이 어떻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건축가 입장에서 학교 교육의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못 바꾸더라도 공간은 가능하다고 본다. 학교 공간만 제대로 바꿔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좋은 학교 공간으로 소개한 일본의 후지유치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유현준 교수 강의 유튜브 캡처

-이상적인 학교라고 생각한 곳이 있다면.

“실제 가보지는 못했는데 영국의 마을학교가 있다. 지인이 살아본 경험을 들려줬다. 그냥 마을이 학교다. 집이 있으면 방 하나를 교실로 쓴다. 다른 교실은 다른 집에 있다. 학교와 마을의 경계가 모호하다. 온 주민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학교다. 건축의 사례라면 일본의 후지유치원을 꼽고 싶다. 모든 학교가 이렇게 획일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하나의 사례라고 이해했으면 한다. 보시다시피 도넛 모양이다. 중앙 뜰은 어린아이들, 계속 어른들이 돌봐줘야 하는 아이들이 놀게 된다. 조금 큰 아이들, 활동적인 아이들은 2층을 빙글빙글 다니며 논다. 다양한 아이들이 공존할 수 있다. 이처럼 학교가 아이들의 다양성을 허용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학교 공간의 다양성은 왜 중요한가.

“외향적인 아이들을 학교생활을 잘하는 아이로 생각하기 쉽다. 축구 잘하고 친구 많고 붙임성 좋은,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5% 정도 된다. 하지만 내성적인 아이도 많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엄마 배 속에서 혼자 있었다. 태어나서 가족 서너 명 정도와 지내다 학교에서 갑자기 수십, 수백명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다. 커다란 운동장은 축구를 즐기는 외향적 아이들이 차지한다. 운동장 외에도 조용히 독서할 수 있는 정원, 사색 가능한 산책로 등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내성적인 아이를 외향적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이들에게도 학교가 포근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바꿔줘야 한다.”

-학교를 양계장 혹은 교도소와 비유했다.

“학교 공간을 보면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아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생각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교육 철학이 학교 건축에 녹아 있다. 기본적으로 건축가는 어떤 건물이든 사용자를 중심에 놓고 설계한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 공간은 학생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다.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물어볼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닐까. 심지어 학교를 선생님들이 설계하지도 않는다. 교육부나 교육청 시설 담당자들이 결정해 왔다. 관리자를 중심에 놓고 설계가 이뤄지니 교도소와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학생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공간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인간이 나올 수 있겠는가.”

교도소(위)와 학교가 구분되지 않는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공간이 사용자 중심이 아닌 관리자 입장에서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유현준 교수 강의 유튜브 캡처

-최근 변화가 있다. 교육부의 ‘공간 혁신’ 사업이나 40년 이상 노후 학교에 적용하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에선 학생과 교사 의견을 설계에 반영하는 ‘사용자 참여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의미 있는 변화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학교의 사용자인 학생이 참여하는 설계, 차기 정부에서 사업 명칭이 바뀌더라도 이런 방향성 자체를 바꿔서는 안 된다. 예전에 어느 신도시 학교 건축 공모전의 심사를 본 일이 있는데 의욕적으로 학교를 동시에 4개 정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스마트학교 등 새로운 학교를 내세웠지만 제 시각에선 하나도 새로운 게 없었다. 엄청나게 돈을 쓰고 껍데기만 바뀌었다. 정형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피부과 시술만 자꾸 하는 것인데 이렇게 퇴행하면 곤란하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참여 학교 중에 이런 사례가 있었다. 다락방 같은 아늑한 공간을 요구하는 학생과 안전 문제로 이를 반대하는 교사·학부모가 ‘아늑한 공간을 만들되 외부에서 보이도록 거울을 설치하자’고 타협한 적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고개 숙이고 책을 봐라’고 강요한다. 이런 아이들이 20년 정도 지나고 어른이 됐을 때 과연 얼마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책에는 중요한 내용이 많지만 그런 지식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계속 바뀐다. 그것보다 학교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이런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배우는 게 진짜 공부일 것이다. 원하는 걸 때로는 관철해내고 때로는 누군가와 타협하는 과정, 그게 결국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 내 의견만 고집하기 어렵구나’ ‘다른 사람 의견을 받아들였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구나’ 같은 경험을 초·중·고 12년 동안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이런 경험을 해본 학생과 입시 준비에만 매달린 아이, 어떤 아이가 만들어갈 세상이 더 좋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하는 현상이 교실 공간에서 출발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씁쓸한 웃음) 우리 사회가 다른 의견에 대해 수용성이 떨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중간 목소리가 사라졌다. 학교와 교육 공간을 고민하게 된 것도 주변에서 이런 비슷한 일(유 교수의 용산 집무실 이전 찬성에 대한 비판들)을 당하는 걸 지켜보고 시작하게 된 듯하다.”

-당장 학교 공간이 바뀌긴 어렵다. 그 사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빈 공간과 빈 시간이다. 한 칸 비어 있는 슬라이딩 퍼즐을 맞춰본 적 있을 것이다. 빈 공간이 없으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지금 학교가 딱 이 상황이다. 모든 공간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다. 시간표도 그렇다. 선생님들이 간섭하는 공간과 시간밖에 없다. 유일한 자유는 쉬는 시간 10분과 점심시간뿐이다. 빈 교실을 테라스로 만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면 가장 좋다.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빈 교실 하나를 개방하는 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잠시만 이런 곳에서 간섭 없이 빈둥거리게 두면 어떨까. 양계장의 닭과 하늘의 독수리의 가장 큰 차이는 자발성이다. 양계장의 닭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으니 24시간 중에 3시간 정도는 독수리처럼 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늘려나가면 어떨까.”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