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을 취재하면서 의문이 있었다. 전북 사람들이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서 대거 산 땅은 상당수가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맹지였다. 현지의 공인중개사,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익을 노렸다면 신도시로 지정될 곳보다 그 주변을 샀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땅 매입은 전례로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의문은 잘 풀리지 않았는데, 최근 재판 결과를 보고 그동안의 일을 복기해 보니 그곳에 땅을 산 이유를 알 것 같다.
의문을 풀어준 열쇠는 ‘환지’라는 보상 방식이다. 도시나 택지 개발에서 일반적인 수용은 돈으로 보상하지만 환지는 다르다. 환지는 땅이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정리되면 다시 땅으로 보상을 받는다. 집단환지 방식을 선택하면 아파트가 지어질 땅을 받을 수 있다. 이 땅은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에 팔 수 있고, 토지 소유자들이 건설사와 공동으로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일반 분양보다 저렴하게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
지난달 법원 판결문에서 LH 전북지역본부 최모 부장의 형과 조카 등 친인척 5명이 땅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이 사건 농지를 잘 살펴보지 않고 총 10억원이 넘는 농지 대금을 지불했다. 상당금액은 제삼자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땅을 빚까지 내서 샀다는 건 확실한 수익 보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토지개발계획에 관한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보여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했지만 그 정보가 어떤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친인척 5명을 수사한 경찰과 기소한 검찰은 그 정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밝혀진 사실을 종합했을 때 그 정보는 환지 보상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LH 직원들이 환지 방식의 개발이 가져다줄 이익을 알고 주변 사람에게 미리 땅을 사게 했다는 얘기다. 전북의 집단 투기 가담자들이 집중적으로 땅을 매입하기 직전인 2016~17년 LH는 광명시, 시흥시와 함께 ‘환지스쿨’이라는 주민설명회 프로그램을 열었다. LH 투기와 관련해 2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정모 부장도 환지 전문가로 불린 사람이다. 그는 전북지역본부에서 광명시흥본부로 발령이 나고 두 달 뒤 매제, 지인과 함께 노온사동 땅 4필지와 건물 1채를 25억원에 사들였다. 그는 또 광명 구름산지구 도시개발사업에도 관여해 LH가 사업 시행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민을 설득했다. 이 지역도 환지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실이 보여주는 건 LH 직원 투기가 단순히 개발 예상지에 땅을 산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 익힌 ‘환지의 기술’을 사익 극대화에 이용한 범죄에 가깝다.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을 게다. 전국의 모든 환지 개발 현장을 전수조사하는 게 옳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수사기관의 의지는 현 정권 종식과 함께 약해지고 있다.
LH 직원 투기를 예방하려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제도 확충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처음부터 땅을 통해 돈 벌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인식과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LH 조직을 변화시키는 게 필요한데, 결국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지난해 정부가 공언했던 ‘해체 수준의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은 차기 정부에 넘어가고 있다. 공급을 늘리는 것도 좋고 세금을 깎아주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평범한 사람들을 허탈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는 새로운 LH 혁신안을 제시해야 한다.
권기석 경제부 차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