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꿀벌이 지키는 도시

입력 2022-04-13 04:07

새 단장을 마친 서울 신월동 꿀벌어린이공원에는 늘어선 살구나무가 만개해 주변을 압도했다. 살구꽃 필 무렵부터 꿀벌 활동이 왕성해지는 시기니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싶다. 요즘 꿀벌이 핫하다. 작년 12월부터 전남 해남, 경남 창녕 등 남부 지방에서 보고되던 ‘꿀벌 실종’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100억 마리 넘는 꿀벌이 사라졌다. 직접적 원인으로 기생충인 꿀벌응애류와 천적인 말벌류, 살충제 등이 언급되지만 이상한 날씨 즉 따뜻하고 눈이 없는 겨울, 열대성 잦은 비와 종잡을 수 없는 기온까지 장착한 봄 그리고 이내 들이닥치는 여름 무더위도 거론된다. 이상함을 넘어 이젠 뉴노멀로 인식되는 기후변화, 기후위기 현상들이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생태계 즉 지구 생명체들 사이에 촘촘하게 얽혀진 그물망의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꿀을 못 먹을까 걱정이 아니라 생태적 안전망의 작은 균열이 자칫 치명적 비극으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꿀벌이 ‘생태계의 카나리아’라 불리는 이유이고, 꿀벌 실종에 우리가 이토록 예민한 이유다. 지방 양봉 농가뿐 아니라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식물도 열매를 맺어야만 살아남고, 다른 생태계 구성원들이 그 열매를 나누며 살아간다. 꿀벌이 도시에 꼭 필요한 이유다.

서울 주변 산자락에 아카시아꽃(아까시나무)이 만개하면 드럼통 가득 향긋한 꿀을 채취하던 이동식 양봉은 진즉 사라졌다. 속성수로 산림녹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아까시나무숲이 늙어 참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해졌다. 그렇게 도시숲은 더 건강해졌고, 거리와 공원과 강변에 심은 꽃과 나무도 늘어갔다. 게다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으니 도시는 꿀벌이 살만하다. 도시양봉조례를 만들고, 구석구석 밀원식물을 심고, 사람과 공존 가능한 벌통을 놓고, 또 도시 양봉가를 양성해야 한다. 꿀벌을 지키면 꿀벌이 다시 도시를 지킬 것이다. 꿀벌이 지키는 도시가 기후위기에서 모두를 지킬 것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