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모(55) 유진투자증권 사장은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중 유일하게 공무원 출신이다. 기획재정부 엘리트 출신으로 공무원의 ‘꽃’인 1급까지 고속 승진했지만 2018년 스스로 ‘문외한’이라고 인정한 증권업계에 발을 들였다. 우연히 부사장 공모를 보고 ‘생계형’으로 응모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2020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11일 서울 여의도 유진투자증권 사장실에서 만난 고 사장은 민간과 공직의 차이점을 묻자 “와서 보니 국민을 모시느냐 고객을 모시느냐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같더라”면서 “정부나 회사 모두 혼자 크고 혼자 수익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방은 10평도 안 되는 전략기획실 구석자리에 자리 잡고 있고 안에는 그 흔한 소파 하나 없다. 그는 “어떤 이는 내 사무실와 와보고 대표이사 격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직원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눈빛과 얼굴을 봐야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직이 건강한지 알 수 있다”며 웃었다.
만난 사람=이성규 경제부장
-행정고시 패스 후 공직생활을 28년간 했다. 왜 변신했나.
“공직에서 금융업무를 하면서 은행이나 보험업은 들여다본 적 있지만 증권은 문외한이었다. 다만 공직 생활 마지막에 창업 생태계를 키우는 일을 했다. 그때 민간에서 나도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을 만들고 성장시키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와서 해보니 공무원과 증권사 사장 중 어떤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나.
“‘공직에 있으면 민간 마인드로, 민간에 있으면 공직 마인드로 일하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다만 공직에 있으면 창의성이나 신속성이 조금 저해되는 측면에 있어서 최대한 민간기업에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증권업계가 수수료 수익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미래 먹거리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증권업은 ‘현재의 수익이 계속될 수 없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 투자와 시스템 개선을 병행해야 하지만 증권사는 ‘자동차를 고치면서 운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미래 준비에 대한 어려움이 더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투명성이다. 고객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책임 있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고객이 단단해지고 주식시장도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젊은 층들은 주식보다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를 선호한다. 증권업계도 변신이 필요한 때 아닌가.
“금융에서 돌던 돈의 상당수가 암호화폐 쪽으로 가 있는 건 사실이다. 아직 그 시장이 제도권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증권사로서는 암호화폐를 상품화할 수는 없다. 과도한 수수료, 해킹 위협 등 암호화폐 투자의 문제점이 아직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투자환경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한 예로 최근 ‘U.TOO’라는 간편투자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기존 투자 앱은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 하기엔 복잡하고 불친절하다. U.TOO 앱은 주식투자 입문자를 위해 쉽고 단순하게 계좌를 트고 주식을 살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예전부터 한국에는 왜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IB(투자은행)가 나오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IB 쪽에 강점이 있다.
“기업들이 자금을 좀 더 쉽게 조달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 증권업 본연의 업무라고 생각한다. 해외투자 쪽은 인구가 많고 잠재력이 있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쪽에서는 소기업으로 시작해서 중간단계를 뛰어넘어 굉장히 가파른 성장을 보이는 기업들이 많아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공격적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라임, 디스커버리 등 몇몇 건의 사모펀드 사태에서 왜 사고가 났는지를 살펴보고 반면교사로 삼아 그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금융시장이 요즘 좋지 않다. 특히 채권 금리가 요동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금리를 올린다면 채권 만기를 장기화해서 발행하는 식으로 시장 위험성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플레는 수요가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교란이나 에너지 관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기계적으로 올리면 자영업자나 대출받아 기업을 굴리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꼰대 세대다. MZ 세대 등 젊은 직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나.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공용공간을 같이 쓰며 최대한 많이 마주치려 한다. MZ 세대는 자기 목소리를 잘 내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부장급들과 식사를 하면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알아오는 반면 MZ 세대는 본인들이 먹고 싶은 거 고른다. 사내 프로젝트 중 자기 분야가 아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서 보고서 쓰는 게 있는데 젊은 직원들은 공유 주거 보고서를 쓰기위해 직접 공유 주택에 살아보더라. 기성세대는 이런 노력은 하지 않았다. 열정이 있고 매력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후배 공무원들이 민간으로 이직할 때 고민 상담 많이 할 것 같다.
“준비가 되면 나오라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민간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욕구가 80~90%는 넘어야 준비가 됐다고 본다. 이제는 공무원을 모셔가는 시대가 아니다. 자신의 역량을 입증할 수 자신이 있으면 나오라고 한다. ‘포러스’라고 불리는 돌이 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물이 들어가고 나오기 쉽다. 공무원에서 민간 오는 것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능력이 있으면 공무원 시켜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증시 전망을 해달라.
“현재는 조정 받는 국면이고 인플레가 본격적으로 오면 더 길어질 수 있다. 지금 당장 코스피가 3000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해외와 비교하면 우리 증시는 역동적이다. 좋은 기업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경기가 다시 상승 사이클을 타면 내년에는 투자환경이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정리=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