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젤렌스키 절박한 호소… 정부는 능동적인 대응책 찾기를

입력 2022-04-12 04:01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우리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러시아가 침공 전략을 수정하면서 동부지역 위기가 고조된 시점에 한국을 찾았다. 폐허가 된 마리우폴의 영상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상을 전했고, 반인륜적 민간인 학살의 끔찍함을 토로했다. 한국이 국제사회 도움을 받아 6·25전쟁을 극복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군사장비가 필요합니다. 무기가 있으면 우리 국민을 살릴 수 있고, 러시아의 침략전쟁이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도와주십시오.” 절박한 목소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국민과의 대화에서 임기 중 최대 성과로 “세계 톱 텐 국가”를 꼽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됐고 그 위상이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가 됐다는 뜻이었다. 이 답변은 이어지는 질문을 낳았다. 세계 톱 텐 자리에 올랐다면 한국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왔는가. 미묘한 외교 무대서 한 나라의 역할을 무 자르듯 평가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우크라이나 사태에선 과연 그만한 위상을 보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2월 하순 미국은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호주 등과 협의를 거쳐 러시아에 대한 첫 제재를 단행했다. 침공을 강행할 경우 어떤 보복이 따를지 보여줘 전쟁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이에 동참한 동맹국 리스트에 한국은 없었다. 며칠 뒤 주한 유럽국가 대사들은 “한국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라”는 공동 성명을 냈다. 민주주의 질서와 개별 국가 주권을 지키려는 국제사회 대열에 우리가 동참한 것은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가시화된 뒤였다. 마지못해 참여하는 듯한 모습에서 세계 톱 텐의 위상과 역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와의 교역 문제나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 등 국익을 생각한 조치였다고 말하겠지만, 당장의 손익계산보다 더 큰 국익이 있음을 알지 못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의 마인드가 여전히 엿보였다. 러시아의 전범 행태가 드러난 지금도 정부는 지원 범위를 비살상무기로 국한하며 선을 긋고 있다. 더 능동적인 대응책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질서는 급변하고 있다. 냉전 이후 통용돼온 세계화 논리는 낡은 것이 됐고, 미·중 G2 체제가 계속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 외교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해졌다. 지금처럼 주판알 튕기듯 해서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