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축산업의 우울한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라는 보고서를 통해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을 꺼내들었다. 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축 분뇨 등을 유발하는 축산업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환경오염 주범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축산업도 다른 산업처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로 바꾸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렸다. 한국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낙농산업은 시장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절실하다. 이미 국내 낙농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구제역 파동, 저출산·고령화, 여기에 대체유 시장 확대까지 겹치며 국산 유제품 수요는 급감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값싼 유제품 수입이 급증하자 유업계는 생존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물꼬를 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8월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발족하며 낙농제도 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국내산 원유의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낙농진흥회 이사회 의사결정체계 개편 등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낙농진흥회 이사회 개편이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국내산 우유와 유제품 수급 조절 및 가격 안정을 논의·결정하는 기구다. 생산자 7인, 수요자 4인, 학계 1인, 소비자 1인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개의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재적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안건을 심의할 수 있다. 엄격한 개의 조건 때문에 생산자 측 이사 7인이 모두 불참하면 이사회 개회는 물론 안건 심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만 개선하면 가격결정구조 개편처럼 시대 흐름에 맞춘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식품부는 개선안으로 정부 2인, 학계 2인, 소비자 2인, 변호사 1인, 회계사 1인을 기존 이사 15인에 추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합리적인 안이지만 낙농가가 반발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낙농산업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개선안을 심의해야 할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낙농가 단체 반발로 6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난 2월 이사회 개의 조건을 규정한 낙농진흥회의 정관(제31조 1항)을 인가철회하는 고육지책을 꺼냈다. 이후 낙농가 단체는 서울 여의도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농식품부 장관 파면’ ‘낙농제도 개편안 폐기’ 등을 주장하는 중이다. 갈등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는 농업인 소득 및 복지 그리고 식품산업 육성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기관이다. 낙농가 단체는 농식품부가 농업인과 그들의 생계를 말살한다고 주장하지만 업무 특성상 이 주장은 어폐가 있다. 유럽 등 낙농 선진국과 비교해 해를 거듭할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낙농산업을 살리는 방안이 정말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현행 낙농제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