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칭링과 상하이 봉쇄

입력 2022-04-12 04:10

칭링(淸零·제로 코로나)은 중국이 2020년 1월부터 고수하고 있는 코로나19 기본 정책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역 정책이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을 봉쇄한 뒤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실시해 추가 감염을 차단한다. 11일 현재 중국의 공식 확진자는 16만여명, 사망자는 4600여명에 불과하다.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발생률은 114명으로 인구 11만명의 미크로네시아(9명), 52만명의 서사하라(17명)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적다. 공식 통계가 정확한지 의문이지만 방역에서는 가장 성공한 나라다.

칭링이라는 말은 원래 컴퓨터를 초기화하라는 명령어로 쓰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 시스템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이 초기화다. 저장장치에 담긴 모든 프로그램과 정보가 삭제된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다시 다운받고, 평소 백업해둔 파일을 다시 깔면 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초기화시킨다는 말은 무서운 이야기다. 봉쇄가 시작되면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멈추고 택시는 병원 갈 때만 쓸 수 있다. 슈퍼마켓과 음식 배달업소를 뺀 모든 서비스업 영업이 중단된다. 주민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하루에 가구당 한 명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것도 PCR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활동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사적 서바이벌 모드로 버텨야 한다.

하지만 이런 칭링조차 오미크론 변이 앞에는 무기력하다. 방역대국이라는 말에 자부심이 대단한 중국인도 인구 2500만명의 상하이가 2주째 봉쇄되자 반발하고 있다. 며칠 전 노무라증권은 중국 23개 도시 1억9300만명이 봉쇄에 놓여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확진자가 16만명에 불과한 중국에서, 가장 발전한 대도시 주민 2억명이 먹을 게 없다고 걱정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바이러스조차 스스로를 바꾸며 진화하는데 세계 최고의 방역이라는 타이틀에 갇혀 정책을 전환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K방역 자화자찬에 빠진 우리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