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식량위기로 북한 붕괴된다면

입력 2022-04-12 04:02

북한 정권이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 때문에 붕괴되고, 통일이 된 한국이 북한 주민 2500만명을 부양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국제 지정학자인 귄 다이어가 쓴 ‘기후대전’이라는 책에 나오는데 지구온난화로 비롯될 세계 곳곳의 정치적 갈등에 대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남부 유럽이 사막화되고, 식량 부족으로 인한 이주를 막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및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북부연합을 맺으면서 유럽연합은 해체된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대규모 바리케이드를 치고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남미의 기후 난민을 향해 무력 행사를 서슴지 않는다. 중국은 농지가 황폐화되는 반면 러시아는 기온 상승으로 시베리아 지역의 농업 생산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러시아로 이주하려는 중국인들 때문에 두 나라 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공유하던 인더스강 유량이 줄어들면서 물 분쟁이 일어나 핵전쟁으로 치닫는다.

벚꽃 만발한 봄날과 거리가 먼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식량위기를 주제로 인터뷰했던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연일 식량위기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지금이 예고편에 불과할 만큼 기후변화로 인해 몇 배는 더 심각한 식량위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경재난의 종착점이 식량위기이고, 그로부터 야기될 변화를 각국이 국가안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펜타곤의 인류 멸종 시나리오’라는 부제를 달고 지난해 국내 출간된 ‘기후 붕괴, 지옥문이 열린다’는 미국 국방부가 기후위기를 부정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기후변화가 낳을 식량과 물 고갈, 국제 분쟁의 위험성을 분석했음을 보여준다.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가 2019년 펴낸 ‘실존적 기후 관련 안보 위기’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안보 전략가들은 기후위기로 가장 타격을 받을 아시아의 식량 난민들이 비행기나 배를 타고 호주로 몰려들면 호주군은 이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막고 누구를 받아야 하는가를 논의했다.

이쯤 되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개개인의 선한 노력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자명하다. 결국은 정치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기후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의 툰베리들이 모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에게 직접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아 기후·환경공약 점수를 매겼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 시스템의 전환 필요성’ ‘탈석탄의 필요성’ ‘정치적 의지’ 등 5개 영역으로 꼼꼼하게 이뤄진 평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5점 만점에 0.5점을 받았다. 다른 주요 후보들도 낙제점을 받기는 매한가지였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9위이고, 기후 정책과 이행 수준을 평가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4개국 중 59위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자연 생태계 복원의 마지노선으로 삼은 지구 기온 상승 폭 1.5도를 넘는 시점을 이르면 2030년으로 예상했다. 남은 시간의 대부분이 윤 당선인의 임기와 겹친다. ‘기후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할 윤 당선인의 어깨가 무겁다.

다시 ‘기후대전’으로 돌아가면, 2011년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될 때 북한의 붕괴 시기를 2020년으로 예측했다. 저자의 나머지 전망도 과장된 것이거나 빗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오지 않을 미래라기보다 지연된 미래일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