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선에 졌다고 방역까지 손 놓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맥 빠지고 의욕 바닥난 정부가 ‘이제 끝인데 여기서 뭘 더 하나. 대충 하고 나가자’는 마음은 아닐는지 말이다. 어차피 남의 당에 넘겨줄 나라인데 될 대로 되라, 이런 심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보다 나쁠 수 없다. 그 속마음까지는 몰라도 위기관리자로서 아마추어 정부였다고는 평가할 수 있다.
‘K방역’에는 세심함과 일관성이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이라며 영화관 수용 인원부터 KTX·고속버스 심지어 택시 탑승 인원까지 제한하고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콩나물시루가 되는 버스와 지하철 탑승 인원은 단 한 번도 줄인 적이 없다.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의자는 중간중간 비워두도록 해놓고 객차 내 의자는 붙어 앉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되레 운행시간 단축으로 특정 시간대를 초만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식당 영업시간을 제한한 뒤로는 오후 10시만 되면 집에 돌아가려는 이들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역사로 몰려 북적거렸다. 모두가 신데렐라였다. 그런데도 버스·지하철에서 감염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정부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팬데믹 최대 미스터리다.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슨 범죄자 추적이라도 하듯 감염자 신상과 동선을 탈탈 털어 만천하에 공개한 방식이다. 팬데믹 이래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빅브러더’였다.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사용기록부터 CCTV 영상기록과 위치정보까지 싹쓸이해 확진자가 언제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낱낱이 밝혔다. 비밀 연애나 간첩질을 하다가도 코로나19에 걸리면 들통날 정도였다. 당시 한 카드사 직원은 “정부 산하 빅데이터센터처럼 돼 버렸다”며 “정부 요청 자료가 너무 많아 해당 부서 직원들은 재택근무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감염자 정보 공개는 실명만 가렸지 개인을 광장에 올려놓고 발가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부남이 출장지에서 나이트클럽에 갔다는 정보가 공개되자 누군가는 낄낄댔고 누군가는 욕했다. 한 남자가 확진됐는데 아내는 안 걸리고 처제가 걸렸다고 해서 남자와 처제가 불륜 아니냐는 몹쓸 얘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떠돌았다.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식당 상인은 동네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아 심각한 피해를 볼 뻔했다.
신상털기 방역은 결과적으로 당사자를 망신 주고 ‘민폐자’ 낙인을 찍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이들은 감염자에게 돌을 던졌고, 정부가 공개한 정보로 추가 신상털기에 나서기도 했다. 감염자가 다녀간 식당은 장사를 접어야 했다. 정부 공인 신상털기는 관음증과 맞물려 나쁜 방향으로 상승 작용을 했다. 방역 명분에 죄책감도 희미했다. 확대·재생산된 소문 중에는 허위·오정보도 수두룩했지만 전쟁 중 민간인 희생을 대하듯 부수적 피해로 취급됐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던 나라가 이제는 걸리든 말든 감염 경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감염자에게 조심성이 없다고 비난하던 이들도 상당수가 걸렸고 그들도 다른 누군가를 감염시키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에 걸렸다고 비난받지 않는다. 백신 안 맞았다고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이게 정상이다. 그동안 우리가 비정상의 시간을 자성 없이 지내왔을 뿐이다.
K방역은 더 이상 자랑거리로 회자되지도 않지만 감염을 비난거리로 만들어 확산 속도를 조금 늦춘 낙인 방역, 망신주기 방역에 박수를 쳐주기는 어렵다. 그러고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니 아예 방역을 다 풀어버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적절한지를 떠나서 방역에 실패한 정부가 줄행랑을 치는 것으로만 보인다.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