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기도로, 그리고 교회를 섬기며 헌신하는 믿음으로 우리를 가르치셨고, 우리가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도록 양육하셨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기도는 우리 모든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영혼의 자양분이었다. 그분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늘 무릎 꿇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한나처럼 자신의 모든 문제를 토로하였고, 기도한 후에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오뚝이같이 일어나셨다.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서 나의 누이들은 한결 같이 어머니의 기도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 훈련을 시키기를, 가장 기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역시 제일 먼저 기도를 하도록 가르치셨다.
취침 전 ·기상 후 기도 가르쳐
나의 큰 누이인 주소희 사모(생명수교회 사모)는 기도에 관한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번 기도를 하면 최소한 한두 시간을 집중하면서 기도를 하곤 하였는데, 기도에 대한 나의 간절함과 끈질김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믿음의 유산이다”
그런가 하면 막내 누이인 주미혜 사모(꿈의 축제교회 사모)는 생생하고 감동적인 기억을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 간절히 때로는 울부짖기도 하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나에게는 자장가처럼 나의 영혼을 평안하게 하였고,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 나의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우리 남매들의 믿음과 헌신의 생활 가운데에는 잔잔히 흐르고 있는 엄마의 기도 소리가 있었다. 지금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 가운데 흐르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나아가는 데 은혜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실로 어머니는 때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때로는 기쁨과 감사의 벅찬 찬양으로, 때로는 어린 사슴이 목이 갈하여 시냇물을 찾으며 허덕이듯이 주님을 찾는 기도의 사람이셨다. 그리고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들려오던 어머니의 그 기도의 음성은 실로 우리 다섯 자녀가 하나님께 간절히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징검다리’였다.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 10여년 동안 심한 치매를 앓으셨다. 나중에는 자녀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런데 필자는 병원에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치매로 인해 정신이 혼돈상태에 있으면서도 기도만은 절대로 잊지 않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간병인이 들어와 웃으면서 “요새는 할머니께서 기도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요새는 기도를 안 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 요새 기도 안 하세요? 기도를 잊어버리셨어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면서 갑자기 내 손을 꼭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 아들 주 목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게 하시고, 주 목사의 앞길을 막는 모든 악한 것들을 주님께서 친히 제거해 주시고 물리쳐 주옵소서. 그리고 주 목사가 더욱더 놀라운 믿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종이 되게 해 주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다.
필자는 어머니의 그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한없이 울고 말았다. 그렇게도 정신이 없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기도를 하실 수 있는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 끝에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을 하셨다. 어머니는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치매에 걸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정신없는 노인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아무리 사람의 정신줄을 놓게 하는 치매라도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오는 믿음의 기도에는 그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결국 필자는 어머니의 그 기도 소리를 통해서 혼미함 가운데서도 자식을 잊지 않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그 놀라운 사랑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통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음성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가슴 깊숙이 전달되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언젠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에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다.
치매 불구 자식위해 기도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4~15).
나는 그 날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느냐”는 이 말씀이 기억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결코 나를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는 때로는 부모들도 사랑하는 자식을 포기할 때가 있다. 그리고 요새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뇌세포가 파괴되는 몹쓸 병인 치매 때문에 자녀들을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필자는 그 날 그 혼미함 가운데서도 나를 알아보시고, 나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음성 속에서 “내가 너를 그렇게도 사랑한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 날 나는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님의 사랑과 그 어머니를 통해서 나를 향해 들려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에 감동하면서 말이다.
“주 목사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결코 잊지 않을거다. 너의 어미가 치매로 인하여 혹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다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느니라”
진실로 은총받은 여인
이렇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주님,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셨습니까?” 고백하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님, 저도 주님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주님을 위하여 어머님처럼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다짐과 헌신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어머님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받아 주실 주님께 어머님을 온전히 올려 드렸다. 그날 나는 병원을 나서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계속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절대로 기도를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어머니, 천국을 소망하시고, 우리 모두 곧 그곳에서 먼저 가신 아버님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우리 주님 계신 천국을 소망하면서 매일 같이 기도하세요”
나의 어머니 이정남 권사님, 그는 실로 이방여인이었으나 믿음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간 룻과 같은 여인이었다. 이방신을 섬기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순교자의 집안에 시집을 오게 되어, 그 후손들 가운데 8명의 목회자가 나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목회자가 나올 것이니, 그녀는 진실로 하나님의 은총 받은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나를 포함한 모든 형제들은 바로 어머니의 중보기도에 힘입어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주승중 목사= 나겸일 목사가 원로목사로 있는 인천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이며, 한국기독교 성자요 순교자로 잘 알려진 故 주기철 목사의 손자이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는 6·25전쟁 때 희생된 손양원 목사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순교자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꼽힌다.
주승중 목사는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B.A.) 졸업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과 동 대학원(Th.M.)을 거쳐 미국 콜럼비아 신학교(Th.M.)와 보스톤 대학교 대학원(Th.D.)에서 유학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2012년 9월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현재까지 아름답게 목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