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했던 삶터가 쓸쓸한 비극의 마을로… ‘똥골’을 아십니까

입력 2022-04-11 04:04
7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빈집에 무너진 자재들이 쌓여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마을에서 유독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고독사’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 동네는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주민 대부분이 떠나 지금은 폐가처럼 버려진 빈집이 늘어가는 곳이다. 지낼 데 없는 빈민층과 노숙인들이 막다른 절망을 안고 걸음 하는 곳이기도 하다.

1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현저2주거환경개선지구 내 주택 2층 단칸방에서 50대 A씨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이미 사망한 지 2주가량 지나서였다. 세 들어 살던 A씨가 한참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식사를 챙겨주러 갔다가 A씨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고 한다. 이 동네에선 지난해 12월에도 홀로 살던 60대 남성이 숨진 지 사흘 만에 발견됐다.

동네 주민들은 고독사한 이들의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이름이나 직업 등은 모른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 주민들 간 왕래는 더욱 줄었다. 이곳에서 10여년간 살았다는 김모(66)씨는 A씨에 대해 “술을 자주 마시고 평소에 지병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A씨가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는 찾지 못했다.

빈집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12월 50대인 B씨가 창문 없는 한 집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는 과거 이 지역에 살다가 타지로 나갔지만, 다시 돌아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지난해 10월에도 타지역 사람인 C씨(51)가 비어 있던 집으로 들어가 목숨을 끊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워낙 빈집이 많고 사는 사람은 적어서 주민들끼리도 일일이 안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둘러본 현저2주거환경개선지구는 재개발 사무실을 제외하면 인적 자체가 드물었다. 대문이 부서진 집 마당에는 버려진 건축 자재들과 쓰레기 더미, 연탄재 등이 가득했다.

이곳은 과거 ‘똥골’로도 불렸던 달동네다. 소위 ‘똥지게’를 지고 인분을 나르던 사람들이 여럿 살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1950년대에는 인근 동네까지 무허가 건축물이 즐비했지만, 도로 건너편에는 아파트와 공원이 들어섰다. 나머지 지역을 두고 2005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됐으나 주민 합의를 이루지 못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재개발 추진 업체에 따르면 현재 이곳에는 원주민은 12명, 세입자는 30~40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55년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최모(83)씨는 “요즘엔 무서워서 해가 떨어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며 “빨리 재개발이 돼 이 지역도 깨끗하고 안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이 지역을 특별순찰구역으로 지정하고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8일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해 잠을 자러 들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곳”이라며 “청소년 범죄 등 다른 범죄 노출도 쉬운 환경이라 순찰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양한주 백재연 기자 1week@kmib.co.kr